우리 사회에서 누가 열린 토론을 거부하는가? 고태진 기자 ktjmms@kornet.net 10월 5일 조선일보에 되새겨 볼만한 칼럼이 하나 실렸다. 김성곤 서울대 교수의 '토론은 없고 흑백만 있다' 라는 글이다. 김 교수는 이 글에서 "바다는 생물인가, 무생물인가?"라는 질문을 예로 들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풍부한 창의력과 상상력을 창출하는 다양한 토론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진정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열린 교육이 아니라, 여전히 닫힌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회의장과 토론장이(특히 국회와 정치판이) 욕설과 폭력과 비방이 난무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옳은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자격이 사전에 검증된 인사들이 출연하는 TV토론에서조차 한심한 모습이 연출되는 현실을 보면 우리 사회는 아직 진정한 토론 문화가 이루어지기가 요원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요 몇 년새 인터넷 문화의 급속한 발전으로 누구나 어떤 논쟁의 정보나 토론의 장에 접근하기가 무척 쉬워졌다. 물론 아직 익명성을 이용한 일방적 욕설이나 비방의 부정적 측면도 없지는 않지만, 이른바 '열린 공간'의 역할은 충분히 수행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종이 신문조차도 <한겨레>같은 경우 '왜냐면'이라는 열린 토론 공간을 할애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열린 토론 문화에 아직도 역행하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곳이 정치권이라고 할 수가 있다. 상대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해서는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폭로와 일방적인 비방이 만연한 곳이며, 국회의원이 아닌 사람에 대해서는 인신공격에 가까운 고압적 훈계와 질책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런데 비단 이러한 문제는 정치권뿐만이 아니다. 3가지의 사례만 들어보겠다. 2001년에 있었던 언론사 세무조사 때 과연 이 세무 조사가 정당한 것인지, 언론 탄압의 음모인지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알다시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이것을 언론탄압으로 규정하고 당시 엄청난 지면을 할애하여 정부를 공격해 댔다. 하지만 그들 자신이 토론의 마당에 나선 적은 라디오 방송 딱 한번 이외는 없었다. 자신의 지면에서는 끝도 없이 자신의 논리와 정부의 비판을 펼쳐 내었지만, 숱한 토론 참석 요청에도 그들은 나서지 않았다. '영향력 1위 언론인' 김대중 조선일보 주필(당시)과 대표적인 진보적 논객인 정연주 한겨레신문 논설주간이 세무조사의 성격을 두고 벌이는 한판의 토론, 참으로 상상만 해도 짜릿하지 않은가? 하지만 김 주필은 사표를 내네, 마네 하면서도 자신의 일방적 주장과 비판만 지면에 쏟아낼 뿐이었다. '병풍'의 주역인 김대업씨는 병역 면제 의혹을 다루는 국정감사에 자신을 증인으로 세워달라고 국회 앞에서 1인 시위까지 벌였지만, 끝내 한나라당은 그를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신성한' 국회에 전과자를 세울 수 없다는 해괴한 이유를 붙여서 말이다. 백일서씨가 라디오에 나왔다가 김대업씨와 얼떨결에 전화 연결이 되는 바람에 봉변을 당하는 장면이 떠올라서 일까? 아니면 정당한 논리로는 김대업씨에게 당할 수 없다고 여겨서 일까? 그도 아니면 정말이지 국회가 너무나 '신성하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갑자기 국회에 똥물을 퍼부었다는 김두한씨가 떠올려지는 것은 왜일까?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조선일보와 공개적으로 토론 한번 해보는 것이 아마도 소원인 듯 하다. 민주당 국민 경선 때부터 조선일보와 토론 한번 하자고 조른 것이 벌써 여러 번이다. 최근에는 9월 27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조선일보와의 공개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수많은 기자들을 거느린 논객들의 집단인 조선일보가 이 제안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여러모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조선일보도 너무나 '신성하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토론은 없고 흑백만 있다" 이 말은 진정 조선일보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김 교수의 칼럼과 나란히 옆면에 있는 김대중 칼럼으로 넘어가 보자. 일방적인 비방과 사실의 과장, 호도로 얼룩진 그의 칼럼의 제목이 '공작과 조작으로 얼룩진'이다. 지금 국민은 어지러움증(症)에 시달리고 있다. 보느니 저질싸움에 거짓경쟁이고, 듣느니 뒷거래요 무슨 풍(風)이고 의혹이요 조작이다. 대통령 아들들이 비리로 연이어 영어의 몸이 되어 검찰의 소추를 받더니 요즘은 병풍을 몰고 나온 김대업이라는 사람의 「테이프쇼」에 검찰뿐 아니라 온 나라가 놀아난 꼴이 되고 있다. 이회창 후보가 최모씨로부터 20만 달러를 받았다는 민주당 설훈 의원의 주장도 사실무근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조작이거나 공작의 결과라는 말이다. 조작과 공작의 연장선상에 세무조사와 대주주의 구속을 통한 일부 비판언론 매장(埋葬)기도가 있었고 각종 안티와 구독거부 운동 등이 그 주변에 있다. 드디어는 남북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해 북한측에 4억 달러를 뒷돈으로 줬다는 엄청난 의혹이 제기돼 사실확인단계로 치닫고 있다. 그에게 있어 현 김대중 정권은 '흑'일 따름이다. 아무리 노벨 평화상을 받아도, 남북 화해를 이끌어 내어도, 경제 위기를 극복해 내어도 '흑'일 수밖에 없다. '백'과 섞인 회색도 그에겐 용납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민주당에 유리한 의혹은 '조작이거나 공작의 결과'라고 단정 할 수밖에 없고, 현 정권에 불리한 의혹은 '사실확인단계'로 가고 있을 따름이다. 그에게 있어 '흑'일 따름인 현 정권은, 또 그에게 있어 '경제도약을 위해 정치적 안정을 필요로 한다는 세력'이었던 군사독재정권보다도 더욱 공작과 조작으로 얼룩진 정권일 수밖에 없다. 정권을 지키기 위해 인혁당 관계자들을 사법 살인한 정권도, 광주의 무고한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 살인한 정권도 다 경제도약을 위한 정치적 안정을 위한 것이었을 따름이었고 공작이나 조작과는 거리가 멀었나 보다. 우리가 애타게 바라마지 않는 것은 거짓없는 정치, 공작없는 권력, 조작하지 않는 행정, 그리고 비록 능란하지는 못해도, 큰 그림을 그려내지는 못해도, 또 그 누구들처럼 군림하는 카리스마가 없어도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솔직하고 정직한 정치의 일상화다. 제발 틀렸으면 틀렸다고 인정하고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고칠 것이 있으면 고쳐 가는, 그리고 국민을 속이려 들지 않는 지도자와 정권이 그립고 아쉽다. 이런 정치하실 분 어디 없나. 조선일보는 자신을 향해 제기되는 수많은 비판에 대해 제발 틀렸으면 틀렸다고 인정하고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고칠 것이 있으면 고쳐 가는, 그런 신문이 될 수는 없나? 이것은 출발은 비록 자신을 비판하는 상대라도 열린 토론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현 시점에서의 정치적 이익보다 우리 사회의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을 깨닫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할 것이다. 김성곤 교수는 칼럼에서 토론을 통한 통합적인 교육의 중요성을, '그러지 않으면 학생들은 지엽적인 역사적 사건만 외울 뿐, 정작 중요한 그것의 역사적 의미는 알지 못하며 역사인식도 가질 수 없게 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역시 제대로 된 교육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김대중칼럼] 工作과 造作과 거짓으로 얼룩진… 어느 비평가는 김대중 정권의 문제는 소수정권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수긍하지 않는 데 있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김대중 정권이 처한 문제의 심각성은 소수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나 선거패배로 인한 다수세력 창출의 실패에 있다기보다 스스로 소수정권임을 깨끗이 인정하고 이에 걸맞은 자세와 전략을 가다듬지 못한 데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정권의 또 다른 본질적 취약점은 도덕성의 부족에 있다. 이 정권의 문제는 부정부패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 정권의 문제는 거짓말에 있고 정치공작(工作)에 있으며 조작(造作)에 있다. 「소수」는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도덕성의 결함은 그야말로 태생적인가보다. 지금 국민은 어지러움증(症)에 시달리고 있다. 보느니 저질싸움에 거짓경쟁이고, 듣느니 뒷거래요 무슨 풍(風)이고 의혹이요 조작이다. 대통령 아들들이 비리로 연이어 영어의 몸이 되어 검찰의 소추를 받더니 요즘은 병풍을 몰고나온 김대업이라는 사람의 「테이프쇼」에 검찰뿐 아니라 온 나라가 놀아난 꼴이 되고 있다. 이회창 후보가 최모씨로부터 20만달러를 받았다는 민주당 설훈 의원의 주장도 사실무근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조작이거나 공작의 결과라는 말이다. 조작과 공작의 연장선상에 세무조사와 대주주의 구속을 통한 일부 비판언론 매장(埋葬)기도가 있었고 각종 안티와 구독거부 운동 등이 그 주변에 있다. 드디어는 남북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해 북한측에 4억달러를 뒷돈으로 줬다는 엄청난 의혹이 제기돼 사실확인단계로 치닫고 있다. 과거의 권력싸움은 경제도약을 위한 정치적 안정과 이를 독재로 몰아간 민주화운동의 대결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부세력의 오랜 집권으로 피폐된 국민의식이 결국 민주화운동의 정당성으로 결집될 수 있었던 것도 우리에겐 숨가쁜 역사의 진전이었다. 그러나 일단 민주세력이 득세한 이후 권력을 가늠하는 새로운 기준과 판단의 잣대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곧 도덕성의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정권의 문제는 이런 변화를 의식하지 못한 채 정치권력의 정당성이 여전히 독재 대 민주화에 있다는 고식적인 수준에 머물러 「민주화=만능」에 안주한 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 대통령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가 국민적 공감대를 얻고 있다는 자만에 빠진 나머지 그 방법과 과정의 도덕성·정당성·합법성 등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거나 무시한 중대한 과오를 범했다. 문제의 심각성은 집권세력의 이런 과오가 과오의 수준에 머물지 않고 과오를 감추거나 정당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게 되고 더 나아가 과오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측의 주장과 입장을 뭉개버리려는 정치적 공작과 조작에까지 손을 내뻗게 되는 데 있다. 지금 산업은행의 현대상선에 대한 4억달러 대출과 이 돈의 행방을 둘러싼 정부·여당의 언행을 보면 이들이 무엇을 공작해놓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마구 해대고 있다는 심증을 갖게 된다. 우려하는 것은 거짓말과 조작과 회피 등에서 빚어지는 정치권력의 최악의 도덕적 해이 현상이다. 이제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다음 정권은 어떠해야 하는가가 점차 자명해지고 있다. 우리가 뽑아야 하는 대통령과 정권은 한마디로 정직성과 도덕성에 대한 국민의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우리 국민의 힘으로 발동이 걸린 정치의 운행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도록 그대로 맡겨두면 된다. 우리가 애타게 바라마지 않는 것은 거짓없는 정치, 공작없는 권력, 조작하지 않는 행정, 그리고 비록 능란하지는 못해도, 큰 그림을 그려내지는 못해도, 또 그 누구들처럼 군림하는 카리스마가 없어도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솔직하고 정직한 정치의 일상화다. 제발 틀렸으면 틀렸다고 인정하고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고칠 것이 있으면 고쳐가는, 그리고 국민을 속이려 들지 않는 지도자와 정권이 그립고 아쉽다. 이런 정치하실 분 어디 없나. (김대중/편집인) 2002/10/05 오전 11:00 ⓒ 2002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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