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전두환씨를 존경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 그들은 “장세동을 보라!”고 말한다. 그들은 장세동씨가 군말 한 마디 없이 주인의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드나드는 것을 보고 전율했다. 아! 아직도 저런 충신이 있다니…. 주인 살린 충견 이야기를 들을 때처럼 목이 메였다.

이게 바로 일본의 `주군-가신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무라이정신, 우리 식으로 말하면 `조폭 윤리’다. 주군은 권력을 독점하고, 가신(사무라이)은 주군을 위해 무한충성을 바치는 윤리관이다. 사무라이들은 주인의 원수를 갚기 위해 분골쇄신하고, 원수를 갚고 나면 할복과 옥쇄(집단자살)로 충성을 증명한다. 이게 바로 주인에게 무한충성을 드리는 사냥개정신이다. 이런 사냥개정신, 충견주의가 바로 일본 군국주의의 뿌리였다.

사냥개정신으로 보면, 전두환 패거리처럼 200명 넘는 나라사람을 학살하고, 헌법질서를 파괴하고, 1조원 넘는 부정부패를 저질러도 `공공의 적’이 아니다. 범죄가 업적이 된다. 충견주의 눈으로 보면, 전두환 패거리가 저지른 범죄는 눈에 보이지 않고 사적 의리만 보인다. 그래서 조폭신문 <조선일보>는 전씨를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했다.

지난 22일, 한 무리의 사람들이 검찰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튿날 이 패거리는 청와대 앞에서도 시위를 했다. 이유는 이회창씨의 아들 이정연씨에 대한 병역 관련 조사가 `정치 공작’이니 “즉각 수사를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신고를 하지 않은 불법시위다. 그러나 아무도 잡혀가지 않았다.

한국에서 `이회창과 아드님들’보다 더 높은 분들이 있을까 민주정부의 대통령 아들들하고는 비교도 안 된다. 김영삼씨의 아들 현철, 김대중씨의 아들 홍업·홍걸은 순순히 조사를 받고 구속되었다. 조사하지 말라고 시위하는 정당도 없었다. 대통령 아버지도 어쩔 수 없었다. 김영삼씨와 김대중씨는 아들의 죄 때문에 `국민’에게 사과하고 용서까지 빌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씨의 자식들이 치외법권을 누렸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이것이 독재정권과 민주정부가 다른 점이다.

한나라당은 139명의 국회의원을 거느린 거대정당이다. 그런데 이들이 하는 일을 보면 한`나라’당이 아니다. 몰표로 밀어줬던 경남지역 주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어도 `나랏일’이나 `나라사람 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이정연씨에 대한 조사 중단뿐이다.

이정연씨의 병역문제는 이정연 개인 문제다. 아무리 넓게 보아도 이회창씨 가정문제를 벗어나지 않는다. 절대로 한나라당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병역비리 혐의에 대한 검찰의 조사는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다. 이런 공권력 행사는 대통령도 막을 수 없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한나라당은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조사 결과를 기다려보자는 김원웅씨, 당사자인 이회창씨를 제외한 137명의 국회의원이 하는 행동을 보라! 그들은 `이회창과 아드님들’의 치외법권을 요구하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시위를 하고, 검찰청 방문해서 수사관을 바꾸라고 요구하고, 이유도 없이 김정길 법무장관 해임을 추진하고 있다. 이회창씨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태세다.

이런 당, 이런 국회의원()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국리민복을 추구하는 한나라당일까 이회창 가문에 충성을 바치는 한집안당일까 `이정연 수호부대’의 137명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일까 이회창 집안의 가신들일까 내가 보기에는 이회창씨와 137명은 `주군-가신 관계’를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했다.

지존의 아드님을 위해 불법 시위에 나선 137명의 가신들! 이들을 보면서 나는 장세동씨가 떠올랐다. `쇼쿤!’을 외치며 장렬하게 할복하는 사무라이들도 떠올랐다. 주인을 살리기 위해 온몸에 물을 묻혀서 불을 끄는 충견도 떠올랐다. 나는 이회창씨가 무섭다. 어떤 스님의 `피바다’ 이야기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최상천/ <알몸 박정희> 지은이·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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