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로부터 자유하고 싶어요"
조선일보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면서도 그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한 사내의 고백

문성 기자 aemet@hanmail.net  

인터넷에 글을 자주 기고하다 보니 메일을 많이 받게 됩니다. 하루에 적게는 수통에서부터 많게는 수십통에 이르기까지 메일을 받는데, 그 내용이 아주 극과 극입니다. 어떤 이들은 가려운 데를 시원하게 긁어줘서 고맙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자신과 정치적 지향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짜고짜 욕설을 퍼붓거나 비난하기도 하고….

나를 비난하는 이들로부터 가장 자주 듣는 말은 "너는 왜 허구헌 날 조선일보만 씹어대냐?"는 겁니다. "조선일보하고 원수졌냐?"는 비아냥도 부지기수입니다. 확실히 내 글 가운데는 조선일보를 '씹어대는' 글들이 많습니다.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글이 기사목록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니까요. 그러면 나는 왜 그토록 조선일보를 '씹어대는' 걸까요?

조선일보가 좋아서 죽자사자 따라다니는 전문스토커도 아니고, 조선일보 개조라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우국지사도 아닌 터에, 또한 안티조선의 명운을 한몸에 걸머진 마지막 전사도 아닌 내가 조선일보 '따위'에 이처럼 매달리는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할 때가 많습니다. 혹 내가 잘못된 것일까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나도 조선일보에 대한 글을 그만 쓰고 싶습니다. 성정이 험악하여 남을 헐뜯는 것으로 오르가즘을 느끼는 사람이 아닌 바에야 누군들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글로써 명성을 얻으려 하겠습니까? 그래봤자 조선일보가 대오각성하기는커녕 오히려 프로조선 독자들로부터 무지막지한 욕설만 바가지로 얻어먹을 뿐인 것을.

문제는 조선일보가 나를 당최 놔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오늘은 조선일보를 안건드려야지 하고 독하게 마음 먹었다가도 어찌어찌 해서 조선일보의 기사들에 시선이 닿으면 도저히 그를 비판하는 글을 안쓰고는 못배기게 되더라 그런 말씀입니다. 조선일보 기사에 로렐라이처럼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만드는 무서운 마력이 깃들어 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런 고민을 나만 갖고 있는 게 아니더군요.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미디어오늘' 최근호에서 한겨레신문 권혁철 기자가 나와 꼭같은 고민을 토로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역시 조선일보 관련 기사를 쓰지 말자 숱하게 다짐했으면서도 어떤 '극악'한 힘에 끌려 또 다시 '안티조선적'인 글을 쓰는 과오(?)를 범하고야 말았다는 거지요. 보시겠습니까?

"한겨레 기자들이 '악의적인' 보도를 해왔다는 조선일보 판단과 관련해 제 경험을 말씀드립니다. 제가 한겨레 미디어면을 맡았을 때 나라 안팎의 미디어 동향이나 방송과 통신의 융합 같은 언론환경의 변화 등을 다양하게 다루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신문이 나오면 '안티조선면' 비슷하게 돼버리곤 했습니다.

저는 '이번 주는 조선일보 관련 기사를 쓰지 말자'는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매주 기사 아이템을 생각할 때 도저히 조선일보를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조선일보의 보도태도가 워낙 '극악'했기 때문입니다..."("방상훈사장, 저도 제소하십시오", 미디어오늘 356호 10면, 2002.8.22)

이것이 어디 나나 권 기자의 경우뿐이겠습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조선일보의 '극악'한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들의 수는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인터넷을 가득 메우고 있는 조선일보 비판글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밤을 반납하면서까지 조선일보와 싸우는 이들의 무모한 열정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사실 그 동안 조선일보를 비판하느라고 쏟아부은 막대한 금전적, 시간적, 육체적, 정신적 손실을 생각하면, 아까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 에너지들을 다른 일에 투자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조선일보가 신문을 제대로 만들어 국민들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일이야말로 조선일보가 할 수 있는 최고, 최선의 애국애족의 길이 될 것입니다.

쓰다 보니 두서없이 글이 길어졌군요. 어쩌면 앞으로도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작업을 계속해서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선일보가 무늬만 신문지가 아니라 정확성, 공정성, 정직성, 균형감각, 책임성을 두루 갖춘 진짜 신문으로 거듭 난다면 모를까, 지금처럼 정도(正道)를 걷겠다면서 사도(邪道)로 시종하고, 중립을 가장하여 편당을 일삼는 '극악'한 짓을 되풀이한다면, 글쎄, 조선일보로부터 자유하기를 바라는 나의 꿈은 요원하지 않겠어요?

"이런 기본정신 아래 우리가 간단없이 채찍질해야 하는 것은 정확성이며 공정성이고 균형감각이며 정직성이다. 그러면서 독자가 요구하는 것은 그 신문의 성격이며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책임성이다. 신문의 책임성은 이 시대적 상황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기에 우리는 보도의 책임성 정확성을 신속성 위에 두려는 노력을 배가할 것이며 우리가 그 책임성에 위배되는 일을 했을 때 엄중한 사회적 징벌을 피해갈 수 없다는 자각을 하기에 이르렀다...."([조선 사설] 조선일보의 正道, 20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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