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사무국
2003/6/16(월) 19:40 (MSIE6.0,Windows98,Win9x4.90) 61.73.13.252 1024x768
나는 왜 안티조선일보를 선언하게 되었나(펌)  



이순원(소설가)

내가 안티 조선일보에 참여한 것은 지난해 4월의 일이었다. 정식으로 안티 조선일보 모임에 가입했던 것이 아니라 그때 십수년 간 집으로 배달되어 오던 조선일보를 끊은 것이었다. 사실은 이 일도 일년을 두고 많이 망설이고 망설였던 일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쉽게 할 수 있는 결정을 나는 왜 이토록 길게 끌었는지.
그때 나도 바깥에서 조선일보와 친한 소설가로 이문열, 이인화, 이순원, 하는 식으로 말을 하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세상의 시선에 대해 내가 섭섭했던 것은 없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보았다면, 거기엔 내가 그렇게 보이도록 행동한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96년 <수색, 어머니의 가슴 속으로 흐르는 무늬>로 조선일보가 주관하는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사회적으로 '안티조선일보 운동'이 있기 전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막 전업을 시도하던 때였고, 나이 마흔 살이 되던 해여서 앞으로의 내 문학에 대해 크게 격려받고 또 고무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게는 첫 문학상이기도 했다.
그리고 틈틈이, '일사일언'이며, 다른 문화칼럼과 경제칼럼을 쓰기도 하고, '이순원' 이름으로 6개월 가까이 매주 토요일마다 '문학레터'를 썼던 것도 오래지 않은 날의 일이었다. 또 5-6년 기간 동안 조선일보 신춘문예 심사를 보았다. 또 책을 내면 낼 때마다 다른 신문과 마찬가지로 조선일보 문화면의 큰 지면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저런 관계 속에 친한 기자들도 많았다. 그러니 누가 보든 조선일보와 가장 가까운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런 내가 어느 날 조선일보를 끊은 것이었다. 여기서 '끊는다'는 것은 단순히 신문만 구독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조선일보에 내 글을 쓰지 않겠으며, 인터뷰 또한 하지 않겠다는 뜻을 포함해서였다.
그때 그 일이 기사화되면서 여기저기 인터넷에 올라온 글 가운데 나를 '배신자'라고 욕하는 글들이 참 많았다. 독자들이거나 혹은 게시판에 글을 올린 분들이 '배신자'니 '돌아온 탕아'니 '친 조선일보 작가'니 하는 말들은 그때에도 지금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간사한 놈' '조선일보의 단물을 빨아먹고 이제와서 배신하는 놈'하는 욕설까지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어쨌거나 1996년 동인문학상 수상 이후 나는 다른 매체보다 조선일보에 더 많은 칼럼을 써왔던 것이 사실이라는 점에서 그 동안 '친조선일보 작가'라고 분류되고 불렸던 점에 대해서 내가 이의를 제기할 부분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 나온 말 가운데 '조선일보가 키워준 작가'라는 말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건 '동아일보가 키워준 작가'라거나 '한겨레신문'이 키워준 작가라는 말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한 신문사가 한 작가를 키울 수가 있겠는가. 오히려 '작가를 키운다'는 말은 신문사보다는 출판사 쪽에 더 맞는 말일지 모른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어떤 신인작가를 발굴해서 틈틈히 작품 발표의 기회를 주는 식으로 성장과정을 도와 처음과는 전혀 다른 작가를 만들어 낼 때, 이럴 때 '어느 작가를 어느 출판사'에서 키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문은 처음부터 그런 역할을 할 수가 없다. 신춘문예로 어느 작가를 뽑았을 때, 그럴 때에도 '배출했다'고는 말할 수 있어도 '키웠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동인문학상을 받은 것이 조선일보가 나를 키운 것이라면 이런 전제가 필요하다. 내가 당치도 않은 작품을 쓰고, 정상적으로는 도저히 받지 못할 상을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어떤 필요에 의해 심사위원들에게 압력을 넣고, 독자들의 눈까지 속여 저에게 준 것이라면 '키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동인문학상을 받은 것을 두고 조선일보가 이순원을 키워준 것이라면 그 후에 받은 세 개의 문학상도 조선일보가 키워줘서 받은 거란 얘기가 될 것이다. 그게 아니라 '칼럼 지면'을 주었던 것이 나를 키운 것이라면, 그러면 작가에게 칼럼 지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소설 발표 지면을 내준 신문사라면 그땐 '키웠다'는 말 대신 어떤 말을 써야 할까?
글을 발표할 지면을 준 것이 작가를 키운 것이라면 나는 동인문학상을 받기 훨씬 전인 아직 신인이었던 시절 한국일보의 연재소설을 썼다. 후에 스포츠조선에도 연재소설을 썼지만 동아일보에도 연재 소설을 썼다. 그리고, 등단한 지 몇 해 되지 않는 그야말로 신인 중의 신인 시절 당시 중앙일보사의 출판국에서 발간하던 「문예중앙」에 신인들로선 문단 전례에 없게 1000매 짜리 장편소설을 전재할 기회를 받았다. 그 작품이 이제는 10년도 더 된 내 출세작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이다.
그때 무슨 신인들에게 이렇게 큰 지면을 내주느냐고 말도 참 많았다. 굳이 키웠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면 나는 중앙일보사의 "문예중앙"이 키운 작가이고, (그래서 그때의 주간이었던 정중수 부장에겐 가끔 농담으로 그렇게 말한다.) 조선일보는 한국일보와 동아일보 뒤가 될 것이다.
신문사는 작가를 키우는 데가 아니다. 키울 구조도 아니다. 오히려 어디에선가 큰 작가를 불러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칼럼 지면을 내 주는 정도이다. 대중성을 알린다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학자들이야 신문칼럼을 쓰는 것으로 새롭게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지만 작가는 애초에 자기 이름을 내놓고 글을 쓰는 것이 업인 사람들이고, 그 이름이라는 게 신문을 통해서보다는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어쨌든 '안티 조선일보'를 선언하기 전까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친 조선일보 작가'라고 여겼다. 그런 내가 조선일보 절독을 처음 고민한 것은 이태 전 여름부터의 일이었다. 그때 언론사 세무조사가 있었다. 몇몇 작가가 그것이 부당하다는 칼럼을 조선, 중앙, 동아일보 지면에 썼다. 나는 언론개혁은 필요하고, 또 사회적 기능에 관계없이 영리법인체이기도 한 언론사 역시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세무 부분에서 성역적 지위를 가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왔다. 이 기회에 올바른 전례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몇 신문사는 그것을 '언론탄압'이라고 맞서고, 그 공방에 작가들이 나서서 자기 의견을 글로 말하고 했다. 거기에 대해서 나는 누구나 자기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하고 생각이 같든 같지 않든 그것은 '언론개혁'과 '언론탄압' 사이에 저마다의 의견이고 소신일 테니까.
그 무렵 아침마다 배달되어온 신문을 볼 때마다 세무조사 반대 입장에 선 신문들이 마치 신문 같지 않고 '그런 신문을 만들어 내는 신문사의 사보' 같은 느낌이었다. 내 느낌으로는 조선일보가 가장 심했던 거 같다. 그 와중에 이문열 작가와 추미애 의원의 '곡학아세 공방'이 있었다.
그때 나는 경향신문의 '정동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언론사 세무조사 공방'에 맞물려 벌어지는 '공학아세 공방'을 보며 그 두 가지 일 사이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몰고 가는 분위기 같은 것을 읽었다. 추미애 의원의 취중 욕설과 언론사 세무조사를 같은 항으로 엮어서 독자들에게 이것이 잘못되었다면 저것도 잘못된 거다, 하고 심정적으로 몰고 가는 묘한 분위기를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쓴 것이 2001년 7월 11자 경향신문에 실린 '본질 벗어난 곡학아세 공방'이고, 한 달쯤 뒤까지에도 신문사마다 언론사 세무조사 공방 얘기가 이것이 신문기사인지 자기회사 변명인지 모르게 이어져 다시 쓴 글이 <신문 읽기의 혼돈과 갈등>이었다.
사실은 그때 결단을 내려야 했는데, 내가 못나 결단력이 없고 또 미적거리다보니 그냥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다시 신문에 대해 마음이 많이 불편해진 것이 지난해 4월의 일이었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국민경선과 관련하여 터져나오는 보도들이 지난해 여름의 '언론개혁 공방' 때보다 더 심하게 보였다. 이른바 '메이저신문 국유화 논쟁'이라는 이름으로 노무현 후보를 향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연일 퍼부어대던 십자포화는 그것이 민주당이 벌이고 있는 국민경선에 대한 보도라기보다는 신문사 사주의 이권과 권한을 위해 신문사의 사운을 걸고 편파와 왜곡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아마 나만 그렇게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만으로 '안티 조선일보'를 결정한 것도 아니다.
나는 신문의 정치면을 유심히 보긴 하지만, 또 때로 정치 칼럼을 쓰기도 하지만 스스로 정치에 관심도 없고 그렇게 정치적이지도 않다. 그렇지만 이건 정말 신문이 기사를 빙자해 가장 나쁜 쪽으로 끝 갈 데까지 가는구나 싶었다.
물론 후일 더 기막힌 기사도 보고 사설도 보았다. 선거 전날 밤 정몽준 후보가 공조를 파기했을 때 조선일보에 실린 선거날 사설 제목은 이랬다.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 내가 국민경선 과정에서 안티 선언을 한 것이 아니라면 아마 그날 밤 그 칼럼에 맞써 <아아, 노무현, 그리고 시지프스>라는 글을 인터넷에 띄울 때 안티 선언을 했을 거란 생각을 한다.
어떻게 저런 제목과 저런 제목 아래의 글들이 입맛 벙긋하면 '정론'을 말하는 신문의 사설인지, 이러고도 스스로 정론지라고 말할 수 있는지. 신문이라기보다는 그런 세치 혀로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자기들 입맛대로 요리할 수 있다는 생각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기사와 칼럼과 사설을 우리는 늘 그렇게 봐 왔고 또 봐 오고 있는 것이다.
이상이 내가 안티 조선일보를 선언하게 된 과정의 일이다.

시민과언론  2003년 3.4월호 제공
  이름   메일 (관리자권한)
  내용 입력창 크게
                    답변/관련 쓰기 폼메일 발송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처음 이전 다음       목록 홈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