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유 수호' 한나라당에 묻는다 한나라당에 유리하면 공정 보도이고, 불리하면 불공정 보도입니까? 문성 기자 aemet@hanmail.net 한나라당 홈페이지 내 '한나라비전'에는 '언론·자유·문화' 항목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다짐이 걸려 있습니다. "비판언론이 권력에 장악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언론자유를 수호하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국민을 위한 공정한 언론보도기관으로 만들겠습니다",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겠습니다", "특정세력이나 권력에 의해 농단 되거나 간섭 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는 등의 구체적인 실천방안들이 거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나라당이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비리 은폐 의혹과 관련하여 선보이고 있는 일련의 언행들을 보고 있노라면, '언론자유를 수호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한나라당의 약속이 화려한 립싱크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한나라당은 지난 6일 오전에 열린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이 땅의 언론들을 싸잡아 성토했습니다. 언론사들이 한나라당의 주문대로 김대업씨의 비리와 전과 사실을 부각시키기보다는 검찰 수사 과정에 초점을 맞춘 것에 대해 불만을 표출한 것이지요. 이 자리에서 서청원 대표는 "(언론이) 이런 식으로 간다면 우리 당은 특별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성 멘트를 날렸고, 김영일 사무총장은 기자들을 향해 "언론인 여러분은 양심이 부끄럽지 않느냐"는 등의 낯뜨거운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언론인의 양심' 운운한 김 총장의 발언이 나중에 문제가 되자 서 대표는 "사무총장이 일부 언론에 대한 불만을 얘기한 것이지 전체 언론에 대해 얘기한 것은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양심 불량한 '일부 언론'이 어디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은 채 말이지요. 그러나 한나라당이 구분지은 '양심불량한 언론들'과 '양심 올바른 언론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날 오전 방배동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김길부 전 병무청장(한나라당원)이 조선, 중앙, 동아, 한국 등 4개 신문사 기자만을 초청하고 여타 신문들이나 방송사 기자들(연합통신 기자 포함)에게는 기자회견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날 인터뷰에서 김 전 청장은 은폐대책회의와 관련한 김대업씨의 주장을 대부분 부인하면서 그가 지난 1월 서울지검에서 수사를 받을 때 김대업씨가 수사관 행세를 했다는 점만을 내내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무튼 이로써 한나라당이 총애하는 언론사들의 명단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셈인데요, 한나라당이 자기들 편이라고 생각하는 언론사들에게는 '양심적'이라고 판정하고,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사들에게는 '양심 불량'이라는 딱지를 붙인 것이 어쩐지 예사로워 보이지가 않습니다. 언론에 대한 한나라당의 파상적인 공격은 그 다음날인 7일에도 계속됐습니다. 한나라당은 이날 오전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은폐 의혹과 관련한 방송사의 보도에 대해 불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며 국회 문광위 소집을 요구했습니다. 한나라당 편파방송대책특위(위원장 현경대)는 "방송3사와 YTN 등 방송사의 최근 병역 관련 보도가 공정성을 잃었다"며 "일련의 편파방송 보도에 대해서는 언론중재위에 제소할 것"이라고 방송사들을 옭죄었다더군요. 이쯤해서 한나라당에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한나라당이 말한 소위 '언론의 자유'입니까? 비판언론은커녕 한나라당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언론사들에 대해서 '특별대책을 세우겠다'느니 하는 위협조차 서슴지 않으면서 어떻게 언론자유를 수호하겠다는 겁니까? 한나라당에게 또 묻습니다. '공정한 보도'와 '불공정한 보도'를 구분짓는 객관적인 기준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냉소하는 것처럼 "한나라당에 유리하면 공정 보도이고, 불리하면 불공정 보도"입니까? 혹 이 땅의 모든 언론들이 한나라당이 총애하는 조중동의 편파·왜곡된 보도자세를 본받아야 한다고 그리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특히 한나라당이 자의적인 잣대에 따라 이 땅의 언론사들을 '양심 건전·양심 불량'으로 편가르고, 자신의 호불호에 따라 차별적·선별적으로 대응하는 것에 대해 전·현직 기자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입법부를 장악한 한나라당이 12월 대선을 앞두고 방송을 길들이려고 한다"거나 "한나라당이 언론사 줄세우기를 통해서 국민 여론을 자신들에게만 유리하게 이끌려고 한다"는 등의 비판의 목소리들이 이미 시중에 파다합니다. 한나라당은 이런 항변들을 들어보지도 못했습니까? 한나라당이 집권도 하기 전에 이런 말이 나올진대 만약 집권에 성공하면 그땐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벌써부터 적잖은 언론인들과 언론사들이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나 글을 썼다 해서 줄줄이 피소돼서 고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혹시 한나라당에 의해 고소당하지나 않을까 두려움에 떨고 있구요. "지금 이 시간에 나를 옥죄고 있는 심리적 위축, 쓰고 싶은 글을 제대로 못 쓰게 만드는 자기검열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 어떤 거창한 이론과 논리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일선에서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머뭇거리고 주변을 살필 때 이미 언론자유는 없다는 것이 가장 단순하고 명쾌한 결론이다..."(김대중칼럼, 너 조선일보에 아직 있냐?, 2001.6.29) 조선일보가 자랑하는 직필의 대가 김대중 주필(현 편집인)의 말입니다. 그가 내린 '가장 단순하고 명쾌한 결론'으로 이 글의 결론을 대신할까 합니다. '비판언론의 고사'를 절규하며 '언론자유를 수호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한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맹성을 촉구하며 글을 갈음합니다. 이 글은 <하니리포터>에도 송고한 글입니다. 2002/08/08 오전 08:23 ⓒ 2002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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