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 기자 aemet@hanmail.net [풍경1] 민주당이 관련됐을 경우 안기부자금 총선지원 문제로 한나라당이 곤욕을 치르던 지난 2001년 1월, 조선일보는 당시 민주당 대표인 김중권씨가 "이회창씨는 당시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발언한 것을 문제삼아 사설에서 <김중권 대표가 ‘검찰총장’인가>(2001.1.6)라고 비아냥거리며 이렇게 타박했다. "정치권으로서는 가급적 입을 다물고 검찰수사의 귀추를 지켜보는 게 옳은 자세이다. 그런데 막상 검찰은 아직 공식적으로 입도 뻥끗하고 있지 않는 마당인데도 집권당 대표가 나서서 야당총재를 구체적으로 지목하며 “이회창씨는 당시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발언을 하고 있으니 그가 ‘검찰총장’이 아닐진대 그의 발언은 너무도 정략적이며 정도를 넘은 것이다...." 2002년 5월 중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검찰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20만달러 수수설’과 ‘세풍’에 대한 수사는 소홀히 하고 민주당과 청와대쪽만 심하게 수사한다"고 불평한 것과 관련, 조선일보는 <노후보 “검찰이 청와대만 몰아붙여">(2002.5.17)라는 제하의 사설을 통해 이렇게 비판했다. "노 후보의 그같은 상황인식과 발언은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를 정확하게 설명한다고 하기 어렵다…. 노 후보는 또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걱정된다는 투로 얘기했지만, 그와 관련해 노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서 정작 해야 할 말은 “왜 어느 한쪽만 불리하게 밀어붙이느냐”가 아니라 “이 사건은 이 사건대로, 저 사건은 저 사건대로 한점 의혹도 없이 철저히 수사하라”이라야 할 것이다…." 2002년 5월 하순, 홍업씨에 대한 대검수사와 관련해 청와대가 "평창종합건설 유진걸씨에 대한 수사과정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첩보를 받고 사실확인차 행정관을 보낸 것"을 문제삼아 조선일보는 <청와대 왜 수사에 끼어드는가?>(2002.5.21)라는 사설에서 청와대와 민주당을 향해 이렇게 쏘아붙였다. "'검찰수사에 모든 것을 맡긴다'고 해놓고서 뭐가 부족해 청와대는 '사실확인'에 일일이 뛰어들어야 했는가. 아니, 그런 '사실확인'인들 청와대가 도대체 무슨 행정체계상의 근거로 스스로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런 첩보가 있었다면 그것은 검찰 상급기관이나 유관부처에서 처리할 일이지 왜 청와대가 직접 알아보러 갔다는 것인지 도무지 수긍할 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 대통령 아들 수사와 관련해 민주당 대선후보와 당대표는 ‘검찰은 야당의 시녀·하수기관’이라는 흔들기를 했다. 이 와중에 또 청와대의 ‘사실확인’ 운운이 자행된 것이다. 결국 청와대는 관여해선 안될 입장임에도 함부로 관여해서 검찰을 또한번 흔든 셈이다. 도대체 대통령 아들 비리수사에 왜 청와대 관료들이 직접 끼어드는가." 2002년 7월, 법무부 관계자의 입을 통해 청와대의 유력인사들이 법무부에 전화를 걸어 '대통령 아들 수사를 적당히 하라'고 했다는 등의 압력을 가했다는 미확인 '설'(說)들이 흘러나오자, 조선일보는 대뜸 <청와대 압력설’진상 밝혀야>(사설, 2002.7.10) 한다며,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 아들 수사에 대한 청와대 압력설의 진실은 뭔가. 사실이라면 국법질서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청와대의 누군가가 실제로 “지휘권 발동…” 운운했다면 이는 검찰의 중립 훼손은 물론, 법치의 뿌리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다…. 청와대는 정말 결백하다면 법무부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이라도 걸어 사법적 소명을 구하는 것이 떳떳한 태도다." 온 국민의 숙원인 검찰의 중립과 정치적 독립을 수호하려는 조선일보의 의지가 이와 같았다. 민주당이나 청와대 인사의 입에서 검찰을 제약하는 말 한마디만 나와도 조선일보의 필봉은 이렇듯 거침없이 정의의 불을 내뿜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면 조선일보가 한나라당 의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풍경2] 한나라당이 관련됐을 경우 2002년 8월 1일, 검찰 출신들로 구성된 한나라당 의원 10명이 백주 대낮에 대검찰청에 떼로 몰려가 이명재 검찰총장에게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비리-은폐대책회의 사건을 검찰이 서울지검 특수1부에 배당하려는 것은 잘못됐다"고 항의하며 대검 중수부에 배당할 것을 요구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한나라당 의원들 - 대부분 국회 법사위 소속 의원들이다 - 이 자당 후보가 피소된 사건에 대해 이처럼 검찰총장을 압박하여 담당부서의 배정에까지 간섭한 것은 누가 보아도 '직위를 이용한 월권행위'를 넘어 '수사의 중립성을 훼손하는 정치적 외압'임이 분명한데도, 놀랍게도 조선일보는 그를 나무라는 글 하나 올리지 않았다. 더욱 지난번 선거법 위반사건 재판과 관련해 법관들의 출신지역을 문제삼아 큰 물의를 일으킴으로써 서청원 대표까지 나서서 사과발언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김용균 의원이 또 다시 병역비리 은폐사건을 담당한 검사의 출신지역을 문제삼는 지역분열적 망언을 거듭했음에도 조선일보는 그에 대해 경고하는 말조차 덧붙이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대신 8월 2일 4면 하단에 '전과 5범 동원한 100% 정치공작'이라는 한나라당의 주장을 대서특필해서 제목으로 뽑고 한나라당이 이명재 검찰총장을 항의방문한 것을 마치 전과 5범인 김대업씨를 동원해서까지 정치공작을 꾀하는 민주당의 음모에 맞선 정당한 자위권 발동인양 기술했다. 한나라당의 검찰'방문'(?)을 민주당의 '정치공작'(?)에 대응하는 자구적 행동으로 바라보는 조선일보의 편향적 시각은 8월 3일에 더욱 빛을 발했다. 조선일보는 1면 하단에 '공작 계속하면 대통령 탄핵'이라는 한나라당측 주장과 '검찰 항의방문은 국기문란'이라는 민주당측 주장을 위아래로 배치하고, 본문에서는 한나라당의 목소리만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2면 사설란에서는 <벌써부터 ‘大選 사생결단’인가>라는 글을 통해 '국민규탄 대회'(민주당), '대통령 탄핵'(한나라당) 등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아들 병역문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을 한 데 싸잡아 비난하면서 "여야가 다른 국정현안을 떠나 이 문제에만 몰두하는 모습은 선뜻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질타했다. 이 사설의 백미를 잠깐 감상해 보시라. "김씨는 병역비리 수사에 참여했지만, 정작 병역비리 관련 사건 등으로 여섯 차례의 전과가 있는 인물이다. 한나라당이 김씨의 배후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이 같은 특이한 이력 때문이다. 한나라당도 검찰을 집단 방문해 수사팀 변경을 요청하는 것 같은 방식은 재고해야 할 것이다." 이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문제를 폭로한 김대업씨에 대해서는 '전과자'란 사실을 거듭 부각시키면서, 문제가 된 한나라당의 검찰외압에 대해서는 "그런 방식은 재고해야 할 것"이라고 사설 마무리에 살짝 끼워 충고하는 조선일보의 따스한 마음씀씀이가 실로 눈물겹지 않은가? 한나라당의 검찰방문을 다룬 조선일보의 글은 이것이 전부다. 4면에도 '이 후보 아들 병역시비'를 둘러싼 한나라-민주 양당의 공방이 나오지만, 김대업씨의 주장과 그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론만 소개될 뿐, 이미 한나라당 의원들의 검찰방문과 그로 인한 수사의 중립성 침해와 외압논란은 더 이상 조선일보의 관심사가 아니다. <글을 맺으면서> 조선일보는 지난 2001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 AP통신과의 기자회견에서 "보도는 공정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트집삼아 "국가 통치자가 언론의 기본이나 다름없는 공정성을 새삼 거론한 것은 우리 언론의 보도 태도가 공정치 않다는 그의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다그치며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언론보도의 불공정성을 지적한 대통령 발언은 언론에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공정성이야말로 신문의 신뢰를 결정짓는 바로미터인 만큼 이의 불공정성을 지적하는 데는 상당한 객관성이 따라야 한다."(사설, 신문보도의 ‘불공정성’ 문제, 2001.2.6) 조선일보가 상기한 사설에서 확언했듯이, 신문보도의 공정성은 '언론의 기본'이며, '신문의 신뢰를 결정짓는 바로미터'다. 하여 묻거니와, 조선일보는 과연 공정한 신문인가? 아니 공정한 신문이라고 스스로 그리 믿고 있는가? 필자는 상기한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대한 조선일보의 너무나 상이한 처신에 근거해 조선일보를 불공정한 신문이라 단언하며, 이와 동시에 감히 레드카드를 제시하는 바이다. 하니리포터에도 송고한 기사입니다. 2002/08/04 오전 07:13 ⓒ 2002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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