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복 어린이 살해 사건을 둘러싼 '오보' 공방에서, 사법부가 조선일보의 손을 들어 주자, 그동안 각종 악의적인 오보로 인한 비판이나 소송에 시달리던 조선으로선 무척 반가운가 봅니다. 사설과 기사를 동원해, 엉뚱하게도 이 사건을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에까지 연결시키는 치기를 보이고 있더군요.

이번 사법부의 판단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조선일보의 보도가 '오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 골자인데, 조선일보는 마치 그 영원한 미스테리로 남을 수 밖에 없는 '반공신화'가 진실로 입증이라도 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보기 민망할 정도입니다.

어제, 조선일보 사설  "누가 우리의 正體性을 왜곡하는가 ? "(제목이 참 가관입니다.)에 이런 대목이 있더군요.

"이처럼 그들의 ‘오보’ 주장이 오히려 오도(誤導)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났으나 그쪽의 해명이나 사과는 일체 없다. 좌파적 사관(史觀)으로 무장한 각종 단체들의 ‘대한민국 역사 흔들기’는 지금도 극성이다. 사실왜곡까지 서슴치 않다가 ‘실형’ 선고를 받은 이번 사례는 빙산(氷山)의 일각일 뿐이다."

우! 하하하 !!

그동안 숱한 악의적이고 비열한 오보를 일삼아 왔으면서도, 한번도 제대로 사과나 해명조차 하지 않았던 조선이, 지금 무슨 자격으로 누구를 나무라고 있는 걸까요?

조선의 수많은 허위보도 사례 중 하나를 보면, 이들의 실체가 더 분명해집니다.

지난 해 3월 조선일보의 김미영 기자는, 탈북자 유태준씨가 아내를 데려오겠다고 중국에 갔다가 북한 당국에 검거되어 잔인하게 공개 처형되었다는 기사를 매우 사실적으로 보도해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후 조선일보는 다시 몇 번의 기사를 통해, 유태준씨가 북한에 다시 들어가자마자 공개처형된 것을 기정 사실로 놓고, 그런 정보가 확실치 않다는 정부 당국을 햇볕 정책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진실'을 은폐하고 있고 탈북자들의 생명과 인권마저 위협하고 있다고 맹비난했습니다. 이를 보고 분노하여 북한과 우리 정부를 성토하는 독자 투고 등도 이어졌습니다. 남한에 있던 유씨의 어머니는 조선일보의 보도만 믿고 애통해 하며 정부당국을 원망했고, 조선은 우리 정부가 유씨 어머니에게 아들의 행방불명을 비밀로 부쳐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기사도 내보냈습니다. 이 뿐 아니라, 조선은 기회있을 때마다, 유씨의 '공개처형' 사실(?)을 정부 공격의 호재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작년 8월에 조선일보가 처형되었다고 단정한 유씨가 생존해 있고, 기자회견까지 하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MBC가 입수함으로써, 조선의 허위 보도가 들통나고 말았습니다.

온 국민을 분노하게 했던, 처참했던 소설의 결말로는 너무도 짤막하고 싱거운 결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렇게 사실 확인도 없이 엄청난 오보를 쓴 김미영 기자가 이 진실 게임의 결말 후 쓴 기사의 내용입니다. 한번 보시죠.

* MBC "유태준씨 생존" 비디오테이프 입수 (조선일보, 2001년 8월 31일 기사)
북한에 피랍돼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졌던 탈북자 유태준(33)씨가 북한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MBC가 30일 보도했다.  MBC는 유씨가 지난 14일 평양에서 가졌던 기자회견 장면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입수했다면서 한국에 있는 그의 가족들이 이 테이프를 보고 유씨임을 확인했다고 보도했으나 테이프 입수경위 등은 밝히지 않았다.
유씨의 어머니 안정숙(58)씨는 "세계 인권단체가 노력해서 피랍된 아들을 제3국으로 불러내 자유의사를 확인하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김미영기자miyoung@chosun.com)

참으로 뻔뻔스럽지 않습니까? 자신이 쓴 '소설'로 많은 국민이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고, 정부 당국은 부당한 공격을 받았으며, 유씨의 어머니는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받았는데, 이렇게 아무런 사과나 해명없이 남의 일 전하듯 기사를 쓸 수 있는 걸까요?

김미영 기자라는 사람, 그 얼굴을 꼭 한번 보고 싶습니다. 그 겁없는 상상력이라면, 소설가로 데뷔해 성공할지도 모르겠는데, 아직 적성에 안 맞는 기자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탈북자 유태준씨 오보 사건은, 수십년 동안 자행되어 온 조선일보의 상습적인 '의도적 오보'의 전형이라 할 수 있지만, 역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입니다.

신문 기사는 '팩트'에 입각하여 써야 합니다. 이것은 그 이념이나 논조와 상관없이 정상적인 '신문'이 지켜야 할 기본 규칙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본이 가장 빈번히, 그것도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자신들의 세계관에 따른 어떤 '불순한' 의도에 의해 지켜지지 않는 대표적인 국내 신문이 바로 조선일보입니다. 한국의 '1등 신문'을 자처하는 조선일보의 이런 모습은 국제적으로 한국 언론의 체면이나 자존심까지 동반 하락시키고 있습니다. 할 말을 하는 것은 좋지만, 하지 않아야 할 말도 서슴없이 하는 것은 좀 문제있지 않을까요?

(문제의 그 날조 기사, 2001년 3월 17일, 조선일보)
한국정착 탈북자 北에 체포 공개처형 - 아내 데려오려다...北-中국경 상봉때 잡혀
(조선일보 김미영 기자)

한국에 정착했던 탈북자가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중국의 북·중 국경지대에 갔다가 북한 당국에 체포돼 북한에서 공개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8년 11월 탈북해 한달 만에 한국으로 들어와 대구에서 살고 있던 탈북자 유태준(33)씨는 작년 6월 중국으로 출국한 뒤 9개월 동안 행방불명 상태였다. 그러나 유씨는 금년 초 함남 함흥에서 공개 총살당한 것으로 최근 전해졌고, 이 같은 사실은 우리 정보당국에서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자가 북한에서 처형당한다는 사실은 그동안 알려져 왔으나, 구체적인 신원이 밝혀진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유씨의 경우 한국에 정착해 한국 국적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의 파장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씨의 공개 처형은 함흥의 많은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집행됐고, “남조선에 갔다 온 민족반역자를 처형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돌았다고 한다.

유씨는 북·중 국경지대에서 북한에 사람을 보내 부인을 불러내 만났으나, 이 같은 사실이 북한 당국에 포착돼 부인과의 상봉 현장에서 국가안전보위부에 체포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체포 후 국가안전보위부의 조사는 대개 3~6개월 정도 걸리며, 그가 탈북 후 남한에 정착한 사실이 드러나 처형당한 것으로 보인다.

유씨는 탈북 전 함흥에 살면서 석탄판매소 판매지도원으로 일했으며, 부인은 유씨의 처음 탈북 때 함께 가기를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보 당국은 유씨가 북한 당국에 체포당해 북한으로 끌려간 사실을 작년 10월 확인했으나 별다른 대응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남한에는 유씨가 탈북 때 데려온 만 5세된 아들과 유씨와 별도로 탈북한 어머니가 살고 있다.

유씨는 부모가 모두 김책공대를 졸업한 엘리트 집안 출신이다. 아버지는 인민경제대학 교수로, 어머니는 외국문출판사에서 일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자랐던 유씨는 독서를 좋아해 톨스토이, 고골리, 셰익스피어 등 세계명작을 두루 읽은 문학소년이었다. 라디오를 통해 바깥사정을 잘 알고 있던 유씨는 고등중학교(중고교) 때부터 이미 반체제 의식이 강했다고 한다.

고등중학교 졸업 후 북한에서는 최고 직장 중 하나라고 할 만큼 권세 좋았던 함남 석탄판매소 판매지도원으로 일했다. 좋은 직업 덕분에 국가안전보위부 간부의 딸과 결혼할 수 있었고 아들을 낳아 살았다. 그러나 그는 어릴 때부터 꿈꾸어온 탈북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1998년 북한을 빠져 나왔다. 아내에게 슬쩍 언질을 했으나 동행을 거부하자, ‘친척집에 다녀오겠다’면서 세 살된 아들만 업고 나왔다.

중국에서 밀항해 부산으로 들어와 대구에 정착했던 유씨는 입버릇처럼 북한에 남은 '아내'를 데려오겠다고 말했다고 주변사람들은 전했다. 대구에서 사는 동안 함께 한 여자가 있었지만 "북한에 있는 애 엄마만한 여자를 찾기 어렵다"고 말해 왔다고 한다.

남한으로 올 때 그의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남한으로 온 그는 탈북자 사회에서도 '외골수' '괴짜'로 통했다. 대구에서 회사원으로 일하면서도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그를 아는 사람들의 전언이다. '자유'와 '따뜻한 가정'을 갈망했던 그는 남한으로 오는 데는 성공했으나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만은 않았던 듯하다. 작년 6월 유씨는 아들을 이웃에게 "닷새만 봐 달라"고 맡긴 채 잠적해 중국으로 떠났다.

작년 10월쯤 우리 정보 당국은 유씨가 북·중 국경지대에서 체포된 사실을 어머니 김영숙(58·가명·2000년 2월 입국)씨에게 확인해 주었다고 한다. 아들보다 일찍 98년 4월 중국으로 탈북했으나 한국에는 아들보다 늦게 작년 2월에 들어와 서울서 살고 있던 어머니 김씨는 그때까지 아들의 출국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아들의 행방불명 소식을 비밀에 부쳐달라는 당국의 요청에 따라 어머니 김씨는 어딘가에 수소문해 볼 기회도 없었다고 한다. 애만 태우다가 비보를 전해 들은 김씨는 "여기서는 키우던 강아지가 없어져도 소동이 나는데 왜 나는 아들을 사지에 보내놓고도 말 한 마디 할 수 없었던가"라며 애통해 했다.

북한은 식량난으로 사회통제가 허술해진 90년대 들어 공개처형을 늘리고 있으며, 특히 탈북 후 남한 사람을 접촉했거나 기독교를 믿게 된 경우는 극형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의 경우 탈북했다가 남한에 정착했던 사람이 다시 북한에 내려와 체포돼 간 첫 번째 사례로 공개처형한 것으로 보인다.

유씨는 처가가 있고, 탈북 전 직장생활을 했던 함남 함흥에서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함흥의 사포구역 영대다리, 만세교 다리밑 등 여러 곳에 공개처형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미영기자 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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