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진실을 전달하여 건전한 여론을 형성시킬 책임이 있다. 이는 언론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나 시청자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실(truth)과 사실(fact)의 차이는 무엇일까. 구한말 황성신문의 사장을 지낸 바 있는 장지연은 사실보도와 진실보도를 사과에 빗대어 설명한 적이 있다. 즉, ‘저기 사과가 두 개 있다’고 한다면 이는 사실보도요, ‘저기 사과가 두 개 있는데 그중 한 개는 쓸 만하고 한 개는 상했다’고 한다면 이것은 진실보도라는 것이다.


이는 진실의 전달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거니와, 언론에서 전달하는 내용이 진실이라기보다는 언론이 보는 사실의 전달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 제대로 된 사실의 전달도 쉽지는 않다. 언론학자들은 사실을 발생한 그대로의 사실, 인식된 사실, 선택된 사실, 그리고 구성된 사실로 구분한다. 언론에서 다루어지는 사실은 대개 선택된 사실과 구성된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언론은 사실을 가감첨삭 없이 충실히 보도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발생한다. 그런데 최근 소위 병풍(兵風) 공방에 대한 보도를 살펴보면 이러한 당위성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보도를 접하다 보면 무엇이 진실인지, 누구 말이 맞는지, 더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이러한 혼란스러움은 사건의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정치적 논리 때문에 생기기도 하지만 철저하게 사실에 근거해 보도하지 않는 언론의 무책임한 태도와 무관치 않다. 신문의 경우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조금씩 드러나는 사실에 대한 과장된 진단이 많이 눈에 띈다. 비록 병풍이 현재 정치권의 가장 중요한 쟁점임에는 틀림없지만 정확한 보도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독자나 시청자들이 이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정치권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정치적 논리에 휘말려 정치권의 확성기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냉철한 판단하에 특정 사안의 핵심 쟁점이 무엇인가에 대해 정의하고 설명해야 할 언론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흥분하고 과민 반응하여 일희일비(一喜一悲) 하는 것은 언론의 기본적인 역할을 저버리는 것이다. 즉, 흥분에 도취한 듯한 언론 보도태도가 정치권의 공방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고 나아가 독자나 시청자들의 사고의 틀(frame)을 고정시켜 정치적 사안에서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를 흐리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과정에 대한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성적 판단을 선호하게 만든다. 이는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야 할 언론이 오히려 알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언론이 이렇게밖에 될 수 없었던 상황이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언론사들은 언론사마다 자신이 처한 정치적 입장에서 취한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변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언론은 사실의

충실한 전달이라는 저널리즘의 기본적 교과서로 되돌아가야 한다. 만일 언론사들이 장기적 안목으로 좀 더 현명하게 생각한다면 현재 언론의 보도태도는 차후에 국민들의 엄중한 비판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실을 왜곡하고 편향된 사고를 갖게 만드는 방향으로 선택되고 구성된 사실을 전달하는 언론은 이미 언론으로서의 생명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재진/한양대교수·언론학〉



최종 편집: 2002년 08월 19일 18: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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