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최규철 논설주간의 컬럼에 대해 남태준 기자 thinkmo@naver.com 9월 26일자 동아일보 최규철 논설주간의 '민심, 이렇게 읽어라'를 읽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글의 대체적인 내용은 정책선거로 가는 것이 바로 민심을 제대로 읽는 것인데 글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그렇게 읽혀지지 않는다. 최 주간은 "한나라당 이 후보는 아들 병역면제 의혹의 수렁에 아직 빠져 있으며, 민주당 노 후보는 왔다갔다하는 언동으로 불안한 이미지를 아직 못 벗어나고 있으며, 정당공천 없이 불쑥 대선 출마를 선언한 정몽준 후보는 무소속으로 나설 것이 아니라면 무슨 당 후보인지 아직 미지수 투성이라는 것"이라며 세 후보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피력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회창 후보와 정몽준 의원의 경우 어느 정도 사실에 근거한 판단이라면 노무현 후보의 평가는 극히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노 후보가 얼마만큼의 '왔다갔다하는 언동'을 보였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지금까지 노 후보의 불안한 이미지는 노 후보의 '왔다갔다하는 언동'보다는 '정제되지 않은 발언의 수위'로 비판받아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깽판' 발언이나 '반미주의면 또 어떠냐?'는 발언을 통해 보수층이 불안한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는 비판인데, 이도 사실은 많은 부분 보수 언론의 맥락을 무시한 채 앞뒤 자른 보도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최 주간은 난데없이 '왔다갔다하는 언동'='불안한 이미지'로 노 후보의 부정적 이미지를 구조화시킨다. 실제로 노 후보만큼 자신의 말과 행동을 지켜온 사람도 없다. 그런 '고지식한' 면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옳기는 하지만 '현실정치 안에서' 불안한 것 아니냐는 평을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재경선'의 문제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최 주간은 이렇듯 노 후보에 대해서는 터무니없는 부정적 이미지 심기를 시도하지만 이 후보와 정 후보에게는 비판의 칼날이 한없이 무뎌지기만 한다. 그는 선거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부관참시식 족보전쟁"으로 가고 있다고 하며 "민주당은 이미 이회창 후보 부친을 일제 강점기 때 전력을 거론하며 공식적으로 거론했으니 앞으로 이런 불똥이 어느 후보까지 번져 나갈지 모를 일"이라며 친일의 문제를 희석시킨다. 이어 "대통령을 뽑자는 선거인가, 후보 부모들 검증하자는 선거인가. 서독의 빌리브란트 전 총리는 사생아였고,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4명의 남자와 5번 결혼한 여자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한 정치지도자가 아니다"며 친일 경력과 재벌 아버지를 둔 이 후보와 정 후보를 옹호하는 듯한 논리를 전개한다. 그러나 최규철 위원은 국민경선 당시 이인제 후보가 노무현 후보의 이념문제를 제기했을 때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않은 바 있다. 즉 지금의 논리대로라면 그때에도 뭔가 이인제 의원에 대해 따끔한 한마디쯤 했어야 옳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노무현 후보의 노풍이 타격을 받게 된 것은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 문제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아들도 아닌 다른 이의 아들의 문제가 노 후보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과연 합리적이고 온당한가에 대한 답변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균형적인 시각을 잃은 상태에서 제기하는 정책대결의 촉구는 그 논리적 정당성을 잃는다. 정책선거가 되지 않는 것이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풍과 아버지의 친일, 그리고 정몽준 의원의 생모 문제와 같은 신변의 문제로만 몰아가는 정치 행태에 문제가 있다는 말에 전적인 반대는 안하지만, 더 큰 원인은 바로 이회창 후보의 토론 기피에 있다는 것을 최 위원이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 위원은 그러한 지적은 뒤로한 채, 마치 이 후보와 정 후보의 약점을 캐는 것에 부도덕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그 저의가 의심스럽게 하는 대목이다. 최 위원의 정책선거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선의를 유지하려면 이런 네가티브식 비판보다는 오히려 누가 더 정책선거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를 밝혀주는 포지티브 비판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정책선거의 핵이라 할 수 있는 TV토론을 회피하는 후보들에 대해 보다 강력한 촉구를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독자들의 마음을 읽는 언론인의 자세일 것이다. [최규철칼럼] 민심, 이렇게 읽어라 추석민심을 둘러본 각 정파는 속으로 뜨끔했을 것이다. 대통령선거를 한다면서 지금 벌이고 있는 선거판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았으니 말이다. 허구한 날 안팎으로 당쟁이나 정쟁에 코를 박고 있으니 한마디로 이것이 무슨 대통령선거냐는 것이다. 지금 같은 지경에서 새 대통령이 나온다 한들 무슨 뾰족한 기대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 민심 아니던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번 16대 대통령선거는 자칫 최악의 감정싸움이 될 것 같아 으스스하다. 사실상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유난히 긴 선거기간 내내 상대방 때리기가 계속된 선거정국이 일찍이 없었다. 특히 통상의 비판 수준을 넘어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는 단계까지 이른 것은 심각하다. 이번처럼 핏발이 섰던 선거분위기도 별로 기억이 없다. ▼감정의 골 심각한 수준▼ 이 와중에서 정당이미지도 흐려지고 대통령후보들도 온전한 모습이 아니다. 본인이 자초했건, 상대방이 뒤집어씌웠건 당쟁과 정쟁에서 튄 흙탕물로 후보들도 볼썽사납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아들 병역면제 의혹의 수렁에 아직 빠져 있고,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왔다갔다하는 언동으로 불안한 이미지를 아직 못 벗어나고 있으며, 정당 공천 없이 불쑥 대선 출마를 선언한 정몽준 후보는 무소속으로 나설 것이 아니라면 무슨 당 후보인지 아직은 미지수 투성이라는 것이다(실상이 그렇다면 선거전을 지금처럼 주도해 온 정치세력은 기선을 잡았다는 점에서 성공한 셈이다). 좋다. 현실정치란 갖가지 정략과 묘책이 얽히고설켜 진행된다는 점은 인정하자. 그런데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잘못을 범하는 것은 별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어떤 후보가 무슨 정책을 내놓은들 귀기울일 유권자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이 문제다. 결국 모두를 신뢰하지 않게 되는 사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다. 가볍게 볼 수 없는 정치위기 같다. 지금은 촌각을 다투는 변화 속에서 매일 세계와 겨루어야 하는 절박한 시점이라고 해왔다. 살아남기 위한 국가 경쟁력이 절실하고, 또 이를 지향하는 정치지도자의 통찰력과 정열, 그리고 정책검증이 필수적이라고 수없이 말해 왔다. 그런데 정작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판은 그게 아니다. 정치판의 싸움을 보노라면 정책대결이란 말조차 꺼내기가 부끄럽다. 지금쯤은 정당별 국정청사진이 나올 때가 됐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다. 정책검증은 물 건너가는 것인가. 자칫 국가미래 설계논의가 유실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설령 후에 전(廛)을 벌인다 해도 그리 유권자의 관심을 끌지는 못 할 것 같다. 그보다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부관참시(剖棺斬屍)식 족보전쟁이 이미 시작됐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미 이회창 후보 부친을 일제강점기 때 전력을 거론하며 공식적으로 겨냥했으니 앞으로 이런 불똥이 어느 후보까지 번져 나갈지 모를 일이다. 부모들 이야기가 이번처럼 도마에 오른 선거가 별로 없었다. 대통령을 뽑자는 선거인가, 후보 부모들 검증하자는 선거인가. 서독의 빌리 브란트 전 총리는 사생아였고,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4명의 남자와 5번 결혼한 여자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한 정치지도자가 아니었다. 호기심 많은 어린이들이 대통령선거는 지금처럼 해야 되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어디 대답해 보라. 대통령선거가 필살의 혈투로 더 크게 얼룩져 가고 있는데도 후보들은 입만 열면 ‘국민통합’이고, ‘이민 가겠다’는 증오의 뿌리가 더 깊이 내려가고 있는데도 ‘국민통합’이다. 이런 판을 만들어 놓고 나서 도대체 무슨 수로 통합하겠다는 것인가. 반드시 정치보복을 하겠다고 하지 않을 양이면 통합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것이 낫다. 한국 정치에서 증오는 이미 심각한 지경을 넘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선거가 끝난 뒤라도 어차피 함께 살아가야 할 상대라면 껄끄러운 경쟁자일지언정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적은 아니다. 그런데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섬뜩섬뜩한 언동은 그게 아니다. 대물림해 온 증오뿐만 아니라 새로운 증오의 씨까지 뿌리고 있으니 어쩌자는 것인가. ‘증오후유증’ 때문에 국가적 뒷걸음질도 뼈저리게 체험하지 않았는가. 그만 했으면 이제 됐다. ▼누가 먼저 ´마음´열건가▼ 정파는 ‘험담만 뱉어내는 토호 집단’에서 벗어나라는 것이 민심이다. 설사 상대방 공격이 근거 없는 비방이라 하더라도, 떳떳하다면 억울하다 소리치며 맞받아 치지 말고 고개를 돌려라. 분명 신선한 바람이 될 것이다.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고, 부닥치지 않으면 소리도 나지 않는 법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금도(襟度)의 정치를 잃어 버렸다. 지금이 그것을 되찾을 기회다. 그런 마음이어야 통합이야기도 꺼낼 수 있다. 물귀신 선거전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차별화 전략이 따로 있지 않다. 민심은 그런 정당, 그런 후보를 보고 싶어한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2002/09/26 오후 1:44 ⓒ 2002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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