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현 정부는 북한 노동당 2중대' 발언을 어찌 보나?

문성 기자 aemet@hanmail.net  

한나라당이 최근 현 정권을 향해 다시 '북한 노동당 2중대'라는 막발을 퍼부었다지요? <조선신보>의 보도로 이회창 후보 부친의 친일 의혹이 재점화되자 김영일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16일 고위선거대책회의에서 "국민은 북한 노동당 2중대 정권의 수립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더군요.

이 말을 듣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만 웃고 말았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미국의 '시다바리'라는 건 온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거대야당의 사무총장이 그를 가리켜 '북한 노동당 2중대'라고 했으니 웃을 수 밖에요.

생각해 보세요. 무슨 놈의 '북한 노동당 2중대' 정권이 미국의 군산업체에 국민의 혈세를 마구 마구 상납하면서까지 미국에서만 85%가 넘는 무기를 구입한답니까. 또 미국이 이라크전쟁을 결행하면 한국 정부가 군사지원을 하기로 했다면서요?

아니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전쟁에 줏대도 없이 몸바쳐 충성하는 '북한 노동당 2중대 정권'도 있답니까. 한나라당의 처지가 아무리 급하더라도 말은 바르게 해야지요. 김대중 정권을 욕하려면 '미국 공화당 2중대'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야 정확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아시다시피 한나라당에서 '북한 노동당 2중대'란 말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00년 11월에도 '수구본색' 김용갑 의원이 면책특권이 보장된 국회 대정부시간을 이용해 현 정부를 '조선노동당 2중대'라고 공격한 적이 있었지요. 그 때문에 여의도가 아주 발칵 뒤집혔어요.

민주당측에선 김 의원의 사과와 속기록 삭제, 출당 및 제명조치 등을 요구했고,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부영 의원 등이 "우리가 ‘노동당 2중대’와 지금까지 정치를 했단 말이냐"고 반발하는 등 진통이 만만치 않았지요. 결국 속기록 삭제와 유감표명으로 사태를 대충 마무리지은 걸로 압니다만.

그러나 여기서 내가 '북한노동당 2중대'론을 꺼낸 것은 한나라당이 아니라 <조선일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한나라당이야 정권탈환에 목마른 정당이니 별 말인들 못하겠어요. 때로 정열이 과다하다 싶으면 개그(개같은 야그)를 남발하기도 하고 그런 거지요. 그러나 <조선일보>는 달라요. 명색이 언론 아닙니까.

게다가 입만 열면 '고급정론지'다, '불편부당한 정도언론'이라고 자랑하는 신문 아닙니까. 이런 <조선일보>가 김용갑 의원의 '조선노동당 2중대' 발언파문 때 어떻게 활약했는지를 더듬어보는 것도 무의미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더듬어 볼 겸, 당시의 기록들을 몇 개만 살펴볼까요?

우선 <조선일보> 2000년 11월 16일자 만물상입니다. <"제2중대"론>이란 무기명칼럼에서 '만물상'은 '조선노동당 2중대'론과 관련한 파문을 "한마디로 현정부의 대북정책을 둘러싼 그동안의 우리 내부의 갈등과 분열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으로 뻥튀기합니다.

이어 "이 발언을 둘러싼 야당 내의 견해대립 양상까지 보면 지금 우리 내부의 ‘남남갈등’은 여·야의 차원을 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거기에 있다"며 남남갈등의 문제로까지 확대시킵니다.

발언의 잘잘못을 묻기보다 발언의 파장에만 주목, 그를 예의 '남남갈등론'으로 몰아 간 것인데요. 조선일보가 김용갑 의원의 발언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선일보>는 그 다음날인 17일에는 <'2중대'보다 더 부적절한 야당 사정>이란 제하의 사설을 게재, 김 의원의 ‘2중대론’발언을 ‘부적절한 것’으로 규정한 한나라당 총재단 회의를 거세게 몰아부칩니다.

"야당의원의 원내 발언이 어떤 선을 넘었을 경우라도 소속의원들은 원군이 돼주고 여당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어야 할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이 김 의원의 발언을 규판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거지요. "같은 당인으로서의 최소한의 동료의식이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거나 "한나라당이 하나의 체계화되고 통합된 정치집단이 되기에는 아직 거리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는 구절이 참으로 매섭지 않습니까.

만물상과 사설 가지고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던지, 18일에는 '직필'의 달인 김대중 주필이 직접 팔을 걷어부치고 나섭니다. 김 주필은 <사과할 줄 모르는 정부>라는 칼럼에서, "국회의원에게 출당과 제명은 사형이나 마찬가지인데 면책특권을 가진 의원의 발언 하나를 가지고 ‘사형’이 운위되는 나라는 명색이 민주국가인 나라에서는 아마도 우리 밖에 없을 것"이라고 민주당을 격하게 비난하는 한편, "걸핏하면 사과를 요구하는 지금의 집권세력은 정작 자신들의 실수와 실정에 대해서는 사과에 인색하기 짝이 없다"며 '조선노동당 2중대' 발언과 전혀 무관한 공적자금문제를 들먹이면서 현 정권을 윽박질렀습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물귀신작전 아닙니까.

지금으로부터 근 2년 전에 <조선일보>가 '정론직필' 이란 이름 아래 선보였던 초식들이 이러했습니다. 김용갑 의원의 '조선노동당 2중대' 발언을 대책없이 뻥튀기해서 남남갈등으로 승화시키기, 김 의원의 발언에 발끈해서 강경대응을 선포한 민주당 의원들을 포용성 부족한 쫀쫀한 인간들로 몰아부치기, 김 의원에게 사과를 요구하면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를 끌어들여 너희는 사과했느냐고 억지부리기, 김 의원의 수구발언에 반발하는 한나라당내 개혁세력들을 해당행위자들로 깔아뭉개기 기타 등등, 다른 신문들은 감히 엄두도 못낼 어마어마한 묘수들을 연거푸 발휘해서 김용갑 의원의 발언을 비판하던 반대자들의 입을 단번에 얼어붙게 만들고야 말았지요.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조선일보> 외 어느 신문이 이렇듯 적나라하게 편당적인 속살을 드러내며 독자들을 유혹할 수 있겠습니까. 이게 바로 '대한민국 일등신문' 조선일보의 힘이지요.

그런데 그러한 <조선일보>도 아직 명확히 말하지 않은 게 있더군요. 하여 차제에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에 의해 '북한 노동당 2중대' 발언이 다시 불거진 김에 단도직입적으로 물음 하나 던질까 합니다.

이번에는 변죽만 울리지 말고 '할 말은 하는 신문'답게 부디 노른자위를 콕 찔러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남북이 주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한 정치공세로 치부하기에 너무나 살떨리는 말이라서 거듭 확인하는 겁니다.

조선일보는 민주당을 '조선 노동당 2중대'라, 현 정부를 '북한 노동당 2중대'라 공격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말을 틀림 없는 사실로 여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거짓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과연 둘 중에 어느 쪽입니까?  



이 기사는 하니리포터에도 송고했습니다.


2002/09/21 오전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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