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도 제 멋대로 왜곡하는 게 평균적 양식(良識)인가? 김동민 기자 wanju@hanil.ac.kr 어찌 하다보니 꼭 짚어야 할 문제를 여러 건 놓치고 말았다. <조선일보>의 표현대로 <'안티 조선'측 잇단 패소(敗訴)>(9월 4일자 A5면)에 관한 보도도 그 중 하나다. 작년 7월 9일자로 이문열씨가 <동아일보>에 기고한 시론 '홍위병을 떠올리는 이유'에 대해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가 낸 명예훼손 소송에 대해 서울지법 민사25부가 지난 8월 14일 패소 판결을 내린 이후, 역시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 등 4개 단체가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서도 서울지법 민사26부가 패소 판결을 내렸으며, 이승복 작문기사 주장에 대해서는 서울지법 형사9단독이 9월 3일 실형선고를 내린 것이다. 이미 여러 기자들이 각각의 사안에 대해 이곳에서 의견을 밝혔고, 언론개혁시민연대의 토론회 내용을 전달한 바 있다. <조선일보> 이한우 논설위원의 9월 6일자 칼럼 <'악의적인' 반대(反對)에 옐로카드>에 대해서도 기사가 올라온 바 있다. 나는 이문열 소송의 판결문을 근거로 하여 이한우가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 밝히도록 하겠다. 이한우는 이 칼럼에서 앞의 두 판결을 언급하면서 "평균적 양식(良識)에서 본다면 당연한 결정"이라고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이어 주절주절 써놓은 내용을 읽다보면 이한우의 양식 수준을 의심하게 된다. 가장 문제가 되는 대목은 다음 부분이다. 법원은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 당시 보여준 그들의 행태가 '홍위병적', '친북세력적'이었음을 인정한 것이지, 그들의 '모든 것'이 곧 홍위병이고 친북세력이라고 판결한 것이 아님을 잘 안다. 과연 법원은 철저한 세무조사와 탈세의 처벌을 요구했던 시민단체의 집회와 시위 등이 '홍위병적'이었고, 안티조선운동이 '친북세력적'이었다고 인정했을까? 거짓말이다. 이문열의 글과 한나라당의 기자회견, 그리고 <조선일보>의 보도 등이 그렇게 표현할만큼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게 판결의 요지다.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인정되면 명예훼손의 책임에서 면책된다는 이론이다. 그 표현이나 보도가 진실이라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판결문 어디에서도 '홍위병적'이거나 '친북세력적'이었음을 인정했다는 문구는 없다. 이게 평균적 양식에서 나온 글이란 말인가? 이한우는 평균적 양식을 소유하고 있는가? 오히려 판결문은 이씨의 표현이 명예훼손에 해당된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홍위병이 주도한 문화혁명에 대하여는 중국 사회를 분열시켜 수백만의 인명이 살상되었고, 지식인 탄압으로 중국 문화를 수 십년 후퇴시켰다는 평가가 있고, 홍위병의 특징으로 거론된 요소들도 대부분 부정적인 내용들인 점에 비추어 보면, 피고의 위와 같은 표현은 원고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고" 있으며, "이 사건 친북세력 발언 중 원고를 친북세력이라 지칭한 부분은 명예훼손적 표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라고 인정한 것이다. 다만 "시민운동이 각종 공공의 사안들에 미치고 있는 영향력 등을 고려하면 시민운동 본연의 순수성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취지가 포함된 이 사건 기고문은 공적 관심사항을 다룬 것으로 그 표현행위의 공공성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판결문은 여기에 "피고가 오로지 원고를 비방할 목적으로 이 사건 기고문을 작성하였다는 취지의 원고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을 부연하였다. 그리고 "위 토론회에 참석하였던 청중들은 피고가 원고측이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사주를 받거나 또는 그에 동조하는 차원에서 안티조선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것으로는 보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피고가 원고측을 감정적으로 공격하는 수사(修辭)적 과장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는 판결이었다. 판결의 요지는 이런 것이었다. 이문열씨나 한나라당, 그리고 <조선일보>가 보기에 시민단체의 주장과 행동이 홍위병과 유사하다든지 친북세력이라든지 라고 했던 표현이 적절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이유의 법리'에 비추어 볼 때 '불법행위'의 책임을 물을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러한 표현이 시민단체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거나 명예를 훼손한 점은 인정하지만, 그 정도 표현은 언론자유의 차원에서 용인할만 하다는 얘기다. 고양이가 쥐 생각하듯이 이문열씨가 그렇게 고상한 취지에서 글을 썼다는 판결에도 수긍하기 어렵지만, 제 멋대로 가공의 판결문을 연상하면서 작문을 한 이한우가 더 한심하다는 생각이다. 이한우는 무슨 근거로 법원의 판결이 '홍위병적'이거나 '친북세력적'이었음을 인정했다는 것인지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이한우의 양식을 평균 이하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2002/09/22 오후 4:48 ⓒ 2002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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