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희망은 함께 만드는 것 〈박주현·사회평론가〉 민주화 과정에서 무임 승차했던 사람들이 더 떵떵거리는 것이나, 개혁의 열매가 개혁의 대상에게 먼저 돌아가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일이다. 헌법을 파괴한 전두환씨가 5·18에 대한 책임을 면하려고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언론을 탄압하는 데 가장 앞장섰던 보수언론들이 정상적인 세무조사를 받은 것을 두고 언론탄압이라며 오기를 부리는 것, 안기부 자금을 받은 위법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총리 지명자의 도덕적 흠결에 대해 삿대질을 하는 것, 의·약분업을 좌초시키기로 작정하고 고가 약품 처방을 주도했던 의사협회가 건강보험 비용이 증가했으니 의·약분업이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것, 5·6공 시절 노골적으로 정치검사 행세하던 사람들이 검찰에 몰려가 병역비리 담당 검사를 바꾸라고 간섭하는 것,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던 국회 다수당 의원들이 청와대 앞에서 집단시위하는 것, 75%에 달한다는 보수언론의 일방적인 편들기에도 배가 고픈 한나라당이 ‘이정연씨를 이회창 후보의 아들이라고 표현했다’는 이유로 MBC에 대해서 시정 공문을 보내고 MBC를 새롭게 국감 대상에 넣는 법안을 추진하는 것 등등 우리는 사회교육상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이제 누가 감히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자 나서서 욕을 얻어 먹겠는가. 그저 한 발 뒤로 물러서서 ‘그 놈이 다 그 놈이다’라고 비아냥거리다가 혹 좋은 시절이 오면 그 분위기에 편승해서 ‘다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며 섞여버리면 되는 것을. 그러다가 시절이 하수상하면 다시 또 ‘그 놈이 그 놈이다’로 자연스럽게 옮겨가면 그만인 것이다. 무임 승차가 성공했던 경험의 후유증이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서 절망을 재생산하는 족쇄가 될 것 같은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그 놈이 그 놈이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절망에 빠져 비탄에 잠겨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할과 선택을 포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의 ‘절망 위장’은 사회를 정말로 절망에 빠뜨린다. 무언가를 해보려는 사람은 그의 거짓 절망 앞에서 날개가 꺾이고 상처를 입는다. 민주 시민이란 자고로 선택에 대해서 함께 책임을 지는 것이다. 청문회라는 복잡한 절차를 선택했으면 그로 인한 다소의 국정 운영 부담을, 국민경선이라는 절차를 선택했으면 그로 인한 비용 부담을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고 민주적인 정당 운영을 선택했으면 일사불란하고 효율적인 정당 운영은 당분간 포기하는 것을 애초에 전제하는 것이다. 물론 부작용이 생기면 약간의 조정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청문회도 하고 국정 운영도 공백없이 하고, 국민경선도 하고 비용도 안 들고, 당권·대권을 분리하고 정당 민주화를 진행하면서 1인 지배 정당의 효율성도 함께 갖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인간의 무리한 욕심일 뿐이다. 노무현 후보가 조선일보에 대해 비판하고 조선일보가 노무현 후보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공정한 보도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의 반응은 일관성이 없다. 조선일보가 불공정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 메이저 신문과 대결을 하다니’라며 비아냥거린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이 불공정한 언론에 대해 단호하게 행동하라는 것인가, 아니면 편승하라는 것인가. 유시민씨가 정치권에 새로운 희망을 만들자며 개혁적인 국민정당 창당 작업에 나섰다. 언론에서는 그동안 현 정치권이 모두 썩었다며 정치 혐오증을 부추겨 왔건만, 정작 새로운 움직임에 대해서는 보도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사람들은 정치권이 너무 속물이라며 비난하면서, 정작 참신한 정치세력이 등장하면 너무 이상적이어서 현실성이 없다며 무시해버린다. 그렇다면 이 정치 현실을 이대로 두자는 것인가, 아니면 바꾸어 보자는 것인가. 이대로는 맘에 안 드는데 내가 나서기는 죽어도 싫고, 그러자니 그 놈이 그 놈이라며 핑계를 대고, 이것이 이 사회에서 무임 승차를 보고 배운 우리들의 한계다. 내가 하는 말이 비아냥이 되어 사회에 절망의 근거가 되게 하지 않으려면, 작은 희망의 씨앗이라도 보이면 물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싹이 트고 자라날 때까지 끈기있게 옆에서 지켜보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싹이 흙을 뚫고 나오는 것은 옆에서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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