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 사회의 정통성 위기/ 시평


국무총리를 인준하기 위한 청문회의 중계 방송을 듣다가 시청자가 두 개의 집단으로 갈라졌다. 한 집단은 아들의 병역을 피하려고 편법이나 불법을 저지르고 돈을 벌려고 땅과 아파트에 투기하는 것은 `누구나 다하는 짓’이라고 감쌌고, 다른 한 집단은 그런 짓은 불법이고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했다. 앞의 집단이 우리나라의 상류층인데 모두가 한 번씩은 그런 짓을 했기 때문에 문제삼기를 싫어한다. 상류층이 이처럼 썩었다는 것이 청문회를 통해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는 지금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투표율이 낮은 이유는 정치적 무관심 때문이고, 이것은 다시 상류층 전체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류 사회의 타락은 외국에서도 큰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대기업이 정부를 접수했다”고 외칠 정도로 정경유착이 강화되어 정부는 대기업이 원하는 것을 정책으로 실시하고 있다. 대기업이 여당에게 정치헌금을 제공하거나 정부와 여당의 고위인사에게 뇌물을 바치기 때문이다. 미국의 엔론은 대통령과 부통령 등 고위 관리들에게 정치헌금 등을 제공하면서 정부의 에너지정책 수립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미국의 산군학복합체는 정부에게 이라크 침공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불법적이고 기만적인 기업회계처리도 상류 사회의 타락상을 드러낸다. 주식가격을 높여 투기 이득을 보기 위해, 또는 주식가격을 높여 경영실적에 따른 상여금을 더욱 크게 받기 위해, 경영자들이 회계법인과 짜고 기업의 현재 상황에 대해 거짓말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상류 사회에 대한 불만은 계속 누적되고 있다.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은 어느덧 권력형 비리를 풍자하게 되었고, `무전 유죄’ `유전 무죄’는 법 집행에 관한 불만의 표현이며, `인권 귀족’이나 `노동 귀족’은 옛날 어느 때 인권운동이나 노동운동에 참가한 것을 배경으로 한 자리 차지해 오히려 인권운동이나 노동운동을 억압하는 데 몰두하는 인사들을 가리킨다. 또한 재벌을 옹호하는 지식인들은 항상 `자유경쟁’을 강조하는데, 정부의 규제만 자유경쟁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재벌 그 자체가 이미 자유경쟁을 억제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지금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각각 `부정부패 정권’과 `대통령후보 아들의 병역 비리’를 문제삼아 매일 입씨름을 하면서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정치활동을 중단하고 있다. 누구의 머리에도 “우리 두 당이 모두 망할 것이다”는 우려가 없는 모양인데, 이 시기가 바로 정치변혁을 위한 `가장 적절한 시기’이다. 부정부패나 병역 비리 둘 다 나쁘기 때문에,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중 어느 하나를 고를 수가 없다. 새로운 정치 세력이 나오지 않으면 민심을 잡을 수가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흔히들 우리는 국민소득수준이 어느 정도에 도달하면 독재나 외세나 부정부패나 불평등이 사라지리라는 `엉터리 유물론’을 믿고 있다. 상류 사회는 그 `잡신들’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국민들 특히 하류층이 팔을 걷어붙이고 상류 사회를 변혁하지 않으면 그 귀신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권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정도가 `국민의 정부’ 아래에서 오히려 강화되었고, 상류 사회를 대변하는 신문이나 정치인들은 의정부 여중생 압살사건에 대해 계속 함구하고 있으며, 대통령 아들 사건에서 보듯이 권력형 비리는 결코 줄지 않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독점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서는 “자유경쟁으로 되돌아 가는” 방안과 “독점을 사회 전체에게 봉사하게 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는데, 앞의 방안은 전혀 현실성이 없으며 역사의 바퀴를 뒤로 돌린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지금 돌고 있는 변혁의 기운을 정치참여의 거부라는 방향보다는 자유·평등·연대의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동원할 필요가 있다.

김수행/ 서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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