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소환]
2006/11/8(수)
친일 역사를 감추기 위한 조선일보의 함정  


이한우와 정진석의 국민사기극
 
 
2월 27일 이한우 논설위원의 글이 조선일보의 지면에 올라왔다. 내용은 정치적 목적으로 방송사들이 역사를 날조하면서까지 조선일보를 죽이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에 붙어사는 사람들이야 그렇게 보고 싶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자신들이 알고 지내오던 것과 방송의 내용은 완전히 반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친일역사는 이한우 논설위원이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일제말기 조선일보가 걸어왔던 역사는 지금까지 그들이 주장해오고 우리가 알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한우 논설위원이 믿고 싶어하는 조선일보의 폐간사유와 진실된 역사의 기록과 분명히 큰 차이가 있다. 이한우 논설의원은 KBS를 공격하기 위해 관훈클럽 사무국장인 정진석 교수가 논문에 발표했던 ‘언문신문통제안’을 인용해 자신들에게 필요한 문구만 뽑아 부각시켜 속여보지만 그것은 조선, 동아 폐간의 직접적인 이유가 아니며 그 이유조차 조선인들이 아니라 일본인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편향된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전혀 독자들에게 밝히고 있지 않다. 진실을 가로막기 위해 조선일보가 만들어놓은 6가지 함정을 밝혀주겠다.

1. 조선일보의 첫 번째 함정,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대한의 친일파들

우리는 친일부역행위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매우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바로 관점의 착각에서 온다. 친일파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우리의 관점은 한민족의 입장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친일행위를 했던 당시 일제협력자들은 일제와 조선인들 사이에서 이중적인 생활을 했던 이들로 조선인들이 볼 때는 악랄한 친일파일지 몰라도 일본인들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조선인들에 불과했던 것이다. 따라서 일본인들은 친일파들의 친일행위에 대해 완전히 만족했던 것이 아니라 항상 의심의 눈으로 감시했으며 당근과 채찍을 동원해 친일파세력을 계속 확장시켜 나갔다. 일본인들이 친일파를 완전히 믿지 않고 의심했던 이유는 그들이 협력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몸에 조선민족의 피가 흐르기 때문이었다. 일본인 아닌 그들은 언제든 자신들을 배신할 수 있다고 믿었고 당장 필요하기 때문에 이용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어쩌면 그러한 의심이 친일파들의 경쟁적 친일행위를 부채질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친일파들은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닌 이중적 삶을 살았으며 그들의 삶은 보는 관점에 따라 친일매국노의 삶일 수도, 일제에 의심을 받은 조선민족의 삶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조선인들이 보기에는 친일파일지 몰라도 일본인들이 볼 때 그들은 단순히 협조 잘하는 조선인들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각의 차이 때문에 임시정부 측에서 작성한 친일파 살생부 명단에 오른 인물들이 항일운동가로 둔갑하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친일세력은 임시정부 측 자료들이 전무한 상태에서 조선총독부의 시각에서 작성한 자료 중 자신들에게 유리한 일부분만을 발췌해 확대 생산했으며 총독부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내용의 자료들은 친일파를 항일운동가로 만들기에 충분한 근거가 되어주었다.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친일파들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교묘한 역사의 조작은 수십 년 간에 걸쳐 곤곤히 되어 수많은 친일인사들이 독립운동가로 기록되고 말았다. 대다수 그런 친일파들은 후기친일파로 불리는 변절한 민족주의자들로 초기에는 일제에 저항했지만 결국 순응하다 못해 변절하고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전시동원체제 하에서 조선에 대한 수탈과 착취에 앞장섰던 인물들이다. 하지만 조선의 젊은이들을 전쟁터와 정신대로 보내기 위해 민족을 배신했던 이들은 과거의 항일행적만을 내세워 항일운동가로 둔갑한다.

조선, 동아일보도 마찬가지이다. 두 신문은 비록 친일파들에 의해 친일을 목적으로 창간되었으나 1920년 대 민족진영의 항일언론투쟁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중일전쟁 이후 민족지적 색채는 아예 없어지고 친일선전지로 변질되고 만다. 그리고 사주들은 각종 친일단체의 간부로서 활약하며 조선인 수탈에 앞장서게 된다. 비록 친일파들에 의해 창간되었지만 조선, 동아는 한 때 민족지였다. 그러나 한 때 민족지적 색채를 띠었다고 민족지로 기록하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닐까? 왜냐하면 그렇게 따지자면 친일의 중심에 서 있었던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매일신보 역시 민족지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신보는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창간된 신문이다. 하지만 한일합방 이후 일본인들의 손에 넘어가면서 친일신문이 되었고 우리는 그 신문을 친일신문으로 알고 있다.

1930년대 후반부터 조선, 동아 두 신문은 매일신보와 전혀 차이가 없는 신문이 되고 말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신문사의 소유가 일본인이 아닌 일제에 협조적인 조선인이었다는 것이었다. 매일신보는 조선일보의 친일논조에 경쟁의식을 느끼며 ‘격세지감’이라는 단어로까지 표현한다. 즉 일제말기 조선, 동아는 총독부의 기관지와 다름없는 신문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동아는 자신들을 민족지라 부른다. 친일파도 조선이기 때문에 조선인이 소유한 신문은 민족지가 맞다는 식의 논리이다. 항일운동하다 변절해서 친일파로 전향한 사람들을 항일운동가로 부르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그런 식의 논리라면 박정희 전대통령도 공산주의자로 불러야 합당한 것 아닌가?

2. 조선일보의 두 번째 함정, 강제폐간 주장은 착각현상을 이용한 역사날조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의 제 6전시관에 가보면 일제시대 항일언론운동과 관련된 사진자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눈에 띄는 사진 중에는 독립신문과 그 옆에 걸려있는 조선일보의 사진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밑에는 총독부에 의해 1940년에 강제폐간 되었다는 설명이 적혀있다. 마찬가지로 얼마 전까지 한 가운데 전시관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전시되다 철거된 조선일보 윤전기의 설명에도 비슷하게 쓰여 있었다. 누가 봐도 항일운동하다가 총독부에 의해 강제폐간된 것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독립기념관의 설명이 거짓일까?

설명은 거짓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총독부에 의해 강요에 의해 폐간된 것이 맞다. 총독부가 아니었다면 조선일보는 폐간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100% 착각할 수 밖에 없는 말장난이 숨어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당시 항일운동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본어 신문들도 모두 함께 폐간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폐간당한 일어신문들이 모두 조선일보처럼 항일운동을 했단 말인가? 즉 조선일보가 항일운동을 했건 친일을 했건 그것은 조선일보의 폐간의 결정적 이유가 아니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제폐간이라는 단어는 항일운동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고, 조선일보는 그런 사람들의 착각현상을 교묘히 이용해 국민들을 속여왔다. 외국어대 정진석 교수가 논문에서 밝혔듯이 조선일보가 폐간될 무렵 일본 본토에서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언론은 일본정부의 방침에 따라 통폐합되고 있었다. 바로 국민들을 통제하고 물자를 절약해야만 하는 전쟁상황에서 일본정부는 일종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것이었다. 따라서 조선어로 발행하던 신문들도 친일, 항일과 상관없이 모두 총독부의 조선어기관지인 매일신보로 통폐합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었다. 일본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매일신보로의 통폐합은 어쩌면 당연할 것일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이 정 교수가 논문에서 첫번째 배경으로 설명한 조선일보 폐간의 직접적인 이유인 것이다. 꺼꾸로 얘기해서 일본이 언론사들을 전국적으로 통폐합해야만 하는 구조조정정책이 없었다면 조선일보는 강요에 의해 폐간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조선일보가 항일운동을 연상시키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강제’폐간이라는 단어는 교묘한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강요에 의해 폐간되었던 일어신문들도 그런 식으로 전시되면 모두 항일언론사로 둔갑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조선일보가 폐간된 것은 항일운동의 산물이 아닌 언론구조조정의 큰 흐름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3. 조선일보의 세 번째 함정, 조선일보의 폐간은 강제라기 보다는 합의에 의한 것

조선일보는 자신들이 강제폐간당했다는 것을 항상 강조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강제폐간이란 단어의 어감이 항일투쟁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독부는 조선일보를 과거의 항일언론사들처럼 무력으로 강제폐간시킨 것이 아니라 거액의 보상금에 일자리까지 제공하며 합의하에 폐간시켰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말 안듣는 항일민족지를 무력을 동원해 폐간시킨 것 같은데 그 당시의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조선일보는 총독부에 유체재산 매각 보상으로 80만원을 매일신보로부터 영업권에 매각 보상으로 20만원을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이중 매일신보로부터 받은 20만원은 직원들의 1년 치 임금에 해당되는 퇴직금으로 지불된 것으로 적혀있다.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폐간된 조선, 동아일보의 주요간부들은 경찰간부들과 함께 총독부기관지 매일신보의 임원으로 승진임명된다. 조선, 동아일보 편집국장이었던 이상엽이 부사장으로, 조선일보 동경지국장 출신 김동진은 상무로, 정치부장 이상철, 영업부장 김기범, 주필 서필, 모두 경찰간부들과 함께 매일신보의 임원으로 이동한다. 당시 함께 일한 경찰간부 중에는 일왕으로부터 훈장을 18번이나 받은 악질친일파도 있었다. 통폐합 후 매일신보의 초대사장은 3.1운동 때 33인중 한 명이었으나 1934년 친일파로 변절해 중추원 참의를 지내고 있던 최린이었다. 골수친일파의 집합소 그것이 조선, 동아로부터 영업권을 사들인 총독부기관지 매일신보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조선일보 출신 임원이 그 중에 가장 많았다.

과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항일논조의 신문을 찍다 총독부의 눈에 거슬려 폐간된 것으로 알고 있는 국민들에게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왜 조선, 동아를 만들던 주요언론인들이 총독부의 개가 되어 조선인들을 괴롭혀 공을 새웠던 친일파들과 함께 총독부기관지 만드는 일에 가세한 것일까? 총독부가 경찰을 동원해 독립운동가들을 위협하며 신문을 찍으려 했던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도 이미 골수친일파였기 때문이다. 조선, 동아일보가 폐간될 무렵 사주를 비롯해 조선일보를 구성하고 있던 상당수의 기자들은 이미 친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었으며 그들이 총독부기관지를 만든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조선, 동아는 이미 총독부기관지 매일신보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총독부가 조선, 동아를 폐간시키는 이유로 밝힌 것 중 하나가 바로 모든 신문의 기사가 이제는 차이가 없기 때문에 여러 신문사가 병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모든 신문사가 1936년 말 설립된 동맹통신이 제공하는 똑 같은 기사를 실었기 때문이었다. 즉 당시, 매일신보나 조선, 동아나 큰 차이가 없이 전시체제하에서 조선수탈의 선전도구로 이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시장이 위축되고 전시상황하에서 물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통폐합이라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당시 일본은 신문을 찍을 자원조차 모두 전쟁에 동원했다. 따라서 그런 신문을 만들던 조선일보의 기자들이나 사주가 신문의 폐간 이후에도 계속 친일에 앞장섰던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잘 알려진 것과 같이 방응모 조선일보 사장은 조선일보 폐간 후 다시 월간조선의 전신 조광을 만들어 친일에 박차를 가한다. 그가 과연 항일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각종 친일단체에 참여하며 친일을 한 것일까?

따라서 조선일보를 폐간할 당시 총독부는 강제로 항일논조의 신문을 폐간한 것이 아니라 전시체제하 구조조정차원에서 불가피하게 매일신보로 통폐합한 것이었다. 그것은 IMF라는 위기상황에서 김대중 정부가 과당경쟁의 때문에 추진했던 빅딜같은 구조조정의 일환이었다. 즉 당시 조선일보 사주 방응모는 IMF때의 재벌들처럼 사업의 포기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는 것이다. IMF 당시 김대중 정부가 했던 식으로 총독부는 계속 폐간을 강요했고 조선일보는 마침내 보상금을 받는 대가로 합의폐간한 것이었다. 총독부와 매일신보는 각각 시설인수의 대가와 영업권에 대한 보상으로 거액을 지불했다. 그때 받은 보상금의 일부는 퇴직금으로 쓰였으며 일부직원들은 매일신보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과연 이런 식의 폐간을 ‘강제폐간’이라는 항일의 의미로 불러도 좋은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빅딜로 헐값에 매각된 거대기업들도 김대중 정부에 눈에 거슬려 일제시대 조선일보처럼 통폐합된 기업으로 봐야 옳을 것이다. 조선일보의 폐간이 총독부의 강요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역사의 기록을 근거로 그 이면에는 일정 수준의 합의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뿐더러 폐간의 주된 이유 역시 조선일보의 주장해왔던 ‘항일’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4. 조선일보의 네 번째 함정, 신뢰하지만 완전히 믿지 않았던 조선총독부

조선일보는 불온한 기사를 싣다가 총독부에게 밉보였기 때문에 강제폐간되었다는 식으로 주장하고 있다. 즉 폐간의 사유가 자신들의 항일논조와 민족의식말살에 기인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총독부의 극비문서인 ‘언문신문통제안’의 내용 중에서 총독부가 조선, 동아를 완전히 믿지 않는다는 내용을 발췌해 그 근거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일보 측의 주장이 과연 옳은 것일까?

당시 사주 방응모를 포함한 조선일보의 구성원들은 폐간되기 수년 전부터 친일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각종 친일단체 간부로 활동했으며 조선일보는 이미 항일운동의 도구라기 보다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의 선전도구로 요긴하게 이용되고 있었다. 따라서 조선일보의 사주나 기자들이 폐간 이후에도 계속 적극적으로 친일에 앞장섰던 것 또한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친일파들이 만들던 신문을 총독부는 믿지 못했던 것일까? 그것은 조선일보의 소유권이 비록 일제에 협력하고는 있지만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일보를 상당히 신뢰했지만 비록 신문사의 사주가 친일파일지라도 조선인이었고 과거 민족의식고취에 이용되었던 신문이었기 때문에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일제 말기 조선어신문은 중앙지로 총독부기관지인 매일신보와 민간신문인 조선, 동아일보가 있었다. 기관지인 매일신보는 조선, 동아가 폐간되던 해인 1940년까지 일본어기관지 경성신문이 주식의 45%를 소유한 최대주주였다. 즉 일본인 소유의 신문이었다. 반면 조선, 동아일보는 소유주는 조선인 방응모와 김성수였다.

1938년까지 조선일보는 발행부수는 7만부 동아일보는 5만5000부에 이르며 매일신보는 4만5000부도 안된 것으로 나온다. 조선, 동아의 신문시장 점유율이 훨씬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일제시대 총독부의 기관지 매일신보의 점유율이 왜 이토록 낮았을까? 그 이유 역시 간단하다. 이들 신문들이 조선인들에게 읽혀지는 조선어신문이기 때문이었다. 조선인들은 총독부기관지인 매일신보를 없는 돈까지 들여 자발적으로 보질 않았다. 그렇다고 매일신보가 강제로 지금처럼 무가지와 경품을 동원해 돌릴 상황도 아니었다. 조선인들은 민족지라고 믿고 있는 조선인 소유의 민간신문을 보았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또 다른 의문점이 생긴다. 왜 총독부는 민족지로 불리는 이들 신문들을 계속 발행토록 방치했을까?

1930년 이전까지 조선총독부는 문화통치를 표방하며 민간신문의 발행을 허용했다. 그것은 조선인들의 극한 반발을 무마하는 과도기적 통치형태였다. 따라서 이 때 조선, 동아일보 등의 민족신문들은 사회주의 성향의 민족주의 언론인들의 영향으로 항일투쟁의 도구로 사용된다. 그래서 이때 가장 많은 정간과 기사압수를 당하게 되고 독립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항일언론자료는 모두 이 당시의 기사들이다. 그러나 1930년 들어서면서 상황을 완전히 바뀐다. 일제는 더 이상 문화통치를 하지 않았고 민족말살통치정책으로 전환한다. 총독부의 언론탄압은 강화되었으며 견디지 못하던 신문사는 자진폐간했으며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민족주의 언론인들은 조선일보를 결국 광산재벌 방응모에게 넘기게 된다. 방응모는 1933년부터 조선일보를 인수해 경영을 안정시켰다. 과연 방응모가 민족말살통치기 일제의 언론통제 속에서 어떻게 경영을 안정시킬 수 있었을까?

민족말살통치기에 총독부는 문화통치 때와는 완전히 다른 입장에서 언론을 통제하려 했다. 총독부는 조선의 민족의식을 말살시키기 위해 조선어의 사용을 금지시키고 창시개명을 하는 등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다. 그리고 교육과 언론통제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학생들에게는 교육을 통해 교화하면 됐지만 성인들에게는 교육이라는 방법을 동원하기 쉽지 않았다. 따라서 언론매체는 중요한 조선인 교화의 수단이었지만, 조선반도에서 일본어가 널리 통용되기 전까지 그들은 과도기적으로 조선어신문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일제에게는 조선어신문이 필요했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인들이나 친일파들에 의해 만들어진 신문은 조선인들이 돈을 내면서까지 보지 않기 때문에 결국 망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조선총독부의 고민이었을 것이다. 친일파들에 의해 창간된 조선일보가 결국 망해 민족주의자들에게 넘어가 자신들을 괴롭혔던 것을 그들은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조선총독부는 민족말살정책을 추진할 때 조선인들에게 적당히 읽혀지면서 시국관련이나 시정방침 등에 있어 총독부에게 유리한 기사를 실어줄 협조적인 신문이 필요할 수 밖에 없었다. 많은 조선인들이 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총독부는 민족말살정책에 추진에 있어서 조선어신문의 유용성에 대해 득과 실을 따졌을 것이고 당연히 활용한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1930년 대 민족말살기에 조선, 동아일보 등을 계속 유지시켰던 여러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1930년 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일제가 전시체제로 바뀌고 조선에서 일본어 보급이 거의 완료되는 등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더욱이 대다수 민족주의자들이 변절하고 조선인들이 일제통치에 순응하자 조선어 민간신문의 필요성은 점차 없어져 갔다. 실제 조선총독부는 본토에서 하달받은 전시체제하 언론통폐합 방침에 따라 일본어신문뿐만 아니라 조선어신문을 매일신보로의 통합폐합을 위해 1939년부터 적극적으로 나선다. 매일신보의 발행부수는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일제의 언론사통폐합 때까지 살아남았던 신문은 나름대로 적응을 잘 해왔던 신문이다. 조선일보 사장 방응모는 조선일보의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비록 그의 행동이 친일이든 항일이든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 조선일보의 지면은 총독부기관지화될 수 밖에 없었고 비록 논조 면에서 매일신보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총독부기관지를 능가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쓸모가 없어져 폐간되기에 이른다.

1930년 대 조선일보의 존재가치에 대한 판단기준은 일제의 교화선전을 위한 도구와 민족진영의 민족의 고취를 위한 도구 중 어떤 것이 더 주요했는지가 될 것이다. 이미 30년대 후반에 진입하면서 일제의 선전도구로 전락한 조선일보는 민족진영의 입장에서 그 유용성이 다했다고 볼 수 있다.

5. 조선일보의 다섯 번째 함정, 시나리오의 목적은 특정신문의 폐간이 아니라 구조조정

이한우 논설의원이 인용한 ‘언문신문통제안’의 다섯 가지 시나리오는 그의 주장대로 조선, 동아일보의 폐간 시나리오가 아니다.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것도 밝히기 싫은 부분은 쏙 빼고 말이다.

총독부의 극부문서인 ‘언문신문통제안’에 나오는 다섯 가지 시나리오는 조선, 동아 폐간 시나리오가 아니라 조선어신문의 통폐합을 위한 가상시나리오이다. 물론 이 시나리오 안에는 조선일보의 폐간 시나리오도 하나 있지만, 조선, 동아의 폐간은 악감정을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고 오히려 꺼꾸로 조선일보 쪽으로 일본어신문을 통폐합하는 방안도 있으며 조선, 동아를 통합해 거대 민간신문을 만든다는 안도 있다. 과연 이게 조선, 동아의 폐간시나라오인가? 눈 크게 뜨고 자세히 읽어보자. 이 극비문서에 나오는 다섯 가지 시나리오를 한번 적어보겠다.

1) 2개 신문을 정리 통합하여 매일신보 1개만 남기는 방안. 이렇게 할 경우 조선의 인구에 비해 신무눗자가 적어 조선인의 민의를 폐쇄한다는 비방을 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2개의 민간지가 기관지 매일신보에 매수되었다는 악감정을 불려일으킬 우려가 있다.

2) 조선일보를 평양에, 동아일보를 대전에 이전시켜 지방지로 만들고 서울에는 매일신보만 남기는 방안, 총독부 입장에서는 지방에 분산되는 두 신문의 철저한 통제가 곤란할 뿐만 아니라, 이전 건축 및 경영상 실행에 난관이 예상되고 채산을 맞추기도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3)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합병, 새로운 민간지를 만들어 매일신보와 함께 일반 시사를 보도하는 보통 신문으로 병존시키는 방안, 그라나 두 신문을 합병하면 강력한 하나의 신문이 탄생하여 매일신보를 압도할 우려가 있다.

4) 동아일보를 산업경제 기사만 보도하는 경제지로 만들고 조선일보를 일본어 신문으로 변형하여 종합 일간지로는 매일신보 1개만 남기는 방안. 이 방안도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이 있다. 유리한 점으로는 매일신보를 중심으로 매수하는 것은 아니라는 외형상의 이점이 있다. 또한 서울에서 발행되고 있는 일어신문 조선신간과 조선일일신간을 매수하여 그 발행권을 조선일보로 옮긴다면 일본어 신문을 일거에 정리할 수 있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결과도 예측할 수 있다. 일어 신문으로 전환한 조선일보가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여 조선인의 민의를 대변하는 역할을 맡아 민족의식을 자극할 우려도 없지 않다. 또한 매일 신보가 발행하는 청소년 대상으로 매일신보가 발행중인 일어신문 국민신보와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실릴 것이므로 독자와 광고의 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다. 이로 인해 주식의 양도를 희망하는 주주가 있을 경우에는 최근 행해지고 있는 매매가격을 참작하여 불입금액 한도 내에서 양수하여 주주를 보호하는 방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총독부는 이 네번째 방안은 실생상 및 채산상 여러 곤란한 무제를 일으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를 피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결론지었다.

5)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매수 합병하여 경제만 보도하는 경제지를 발행케 하고 매일신보의 자회사로 만드는 방안. 조선에 이런 종류의 특수신문이 필요하다는 정세에도 순응하고 매일신보와 보도분야를 다르게 하여 대립 경합할 우려가 없다는 점에서 가장 실현성 있는 방안으로 평가하였다.

위의 다섯 가지 시나리오를 보면 조선총독부에서는 조선어신문 뿐만 아니라 일본어신문 정리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조선일보를 일본어 신문으로 변형하여 일본어 신문을 매수하여 발행권을 조선일보로 옮긴다면 일본어신문들도 정리할 수 있다는 일석이조의 장점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가장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로 조선 동아를 합병한다음 경제지를 만든다는 안을 꼽고 있다. 오히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폐간해 매일신보로 통합하는 것은 안좋은 방안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게 조선, 동아일보의 폐간 시나리오일까? 그 보다는 이 다섯 가지 시나리오는 본국의 지시에 따라 언론통폐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온 구조조정 시나리오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즉 조선, 동아를 폐간시킬 목적으로 만든 시나리오가 아닌 것이다. 특히 이 시나리오를 보면 총독부가 조선, 동아를 통합해 민간신문을 만든다거나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일어신문을 통합하는 것을 검토하는 등 당시 조선, 동아와 총독부의 밀착관계를 쉽게 추측케 한다. 다만 조선총독부가 조선인 소유의 신문인 조선, 동아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고 있으며 일본인 소유의 총독부기관지인 매일신보를 중심에 놓고 구조조정을 단행하려 함을 알 수 있다. 이한우 논설위원은 이 다섯 가지 방안을 조선, 동아의 폐간을 위한 시나리오라고 설명했다.

6. 조선일보의 여섯 번째 함정, 일부분을 전체로 포장하는 조선일보의 특기

조선, 동아의 직접적인 폐간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이 1938년부터 시작된 일본정부의 언론사 통폐합방침이었다. 일본은 전시체제하에서 보도의 통일과 자원의 고갈을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1현에 1신문사만 두는 신문사 정리를 단행했다. 조선 또한 예외는 아니었고 총독부는 그 방침에 따라 일어신문과 조선어신문을 통폐합해야만 했다. 그리고 실제로 방침대로 실행에 옮겼다.

처음 이 방침이 일본본토로부터 하달되었을 때 총독부는 위에서 말한 다섯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해 통폐합을 추진하려 했다. 그 중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다섯 번째 시나리오로 조선, 동아를 통합해 경제지로 만들어 매일신보의 자회사로 두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총독부는 총독부 스스로도 우려했던 첫 번째 시나라오인 매일신보로의 통폐합 방안을 따른다. 즉 당시 경제지조차 필요없는 긴박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총독부가 조선, 동아를 폐간했던 직접적인 이유는 조선, 동아가 말하는 항일논조 때문 혹은 민족의식말살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총독부가 상정한 다섯 가지 통제방안 중 네 가지는 폐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약 총독부가 일본정부의 통폐합 방침이 아니라 처음부터 조선, 동아라는 민족지를 폐간할 목적으로 추진했던 것이라면 조선, 동아를 폐간하지 않는 네 가지 쓸데없는 시나리오는 상정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 동아의 주장은 거짓이다. 다만 그들의 주장은 구조조정 차원에서 조선, 동아를 폐간하는 첫 번째 시나리오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될 수 있다.

외국어대 정진석 교수의 논문은 조선, 동아 폐간의 배경으로 당시 일본정부의 언론통폐합방침을 설명해 놓고 있다. 그리고 추가로 조선총독부가 밝힌 조선과 동아를 폐간해야 하는 이유를 네 가지 설명하고 있는데 이 네 가지 이유는 조선, 동아의 직접적인 폐간 이유가 아니라 총독부가 상정했던 가장 실현성 있던 다섯 번째 시나리오를 포기하고 조선, 동아를 폐간하는 첫 번째 시나리오를 선택해야 하는 종합적인 이유를 적은 것이다. 이것은 이미 결정된 하나의 조선어신문사만 남겨야만 하는 전시체제하 언론사통폐방침을 따르기 위해 총독부기관지 매일신보를 남기고 조선, 동아일보라는 민간지를 폐간해야 하는 이유를 밝힌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세 조선어신문사 중 하나만 남겨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하에서 기관지인 매일신보를 남겨야하는 이유를 밝힌 것이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항일논조를 피는 민족지기 때문에 폐간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아래 네 가지 이유를 적는다.

첫째, 반일 민족의식이 일어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조선인들의 반일의식이 마음속에 흐르고 있으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존재하는 한 언젠가는 민족의식이 흘러넘처 매일신보를 복멸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폐간시킴으로써 민족의식을 잘라 없애버리고 매일신보의 발전을 도모하여 민심을 ‘선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둘째, 광고주와 구독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인다. 총독부는 조선-동아의 경쟁으로 독자와 광고주의 부담이 과중하다고 보고 광고주와 독자의 부담을 경감하는 한편 신문 관계자의 부정행위를 막는 동시에 매일신보의 기초를 튼튼히 하고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조선-동아를 통제할 필요가 있다.

셋째, 지면의 획일화로 유사한 신문이 병존할 필요성을 상실했다. 모든 시문은 1936년말 창일된 일본의 동맹통신이 제공하는 똑 같은 기사를 싣기 때문에 주요기사의 내용은 동일하다. 그러므로 서울에서 1개 이상의 조선어 신문이 발행될 필요가 없다.

넷째, 신문용 자재의 절약, 총독부는 1938년 7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1차로 신문용 자재의 강제적 절약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전쟁으로 인한 물자부족을 타개하려는 목적과 언론통제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조선, 동아일보는 자신들의 폐간이 전시체제하 언론통폐합 차원에서 이루어진 불가피한 구조조정이란 것을 한번도 밝힌 적 없다. 그들은 오히려 항일투쟁으로 강제폐간된 것인 양 선전해 왔다. 또한 총독부가 밝힌 첫 번째 시나리오를 선택하게 된 종합적인 이유조차 자신들에게 유리한 이유 단 하나만을 크게 확대해서 독자들에게 보여주며 기만해 왔다. 진실을 정확히 알기 위해 필요한 나머지 이유들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었다. 조선일보가 유일하게 확대해서 밝히고 있는 그 이유조차 조선, 동아가 지금은 비록 협력하고 있지만 언제가는 배신할 수 있다는 일본인들의 의심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러한 일본인들의 의심은 결국 우리나라 명산 곳곳에 민족정기를 끊는다면 철못까지 박는 일을 하게 만들었다. 일본인들은 매우 철저하고 완벽하게 조선인을 통제하려 했으며 계속 의심했고 민족의식을 말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러한 일본인들의 친일파에 대한 의심조차 조선일보에 의해 역사날조의 중요한 자료로 요긴하게 쓰이고 있는 것을 안다면 그 당시 일본인들도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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